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북한에 영향력이 가장 큰 중국을 압박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를 통해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리는 것은 시작이라면 중국산 제품의 미국 수출을 막도록 관세를 올리는 것은 본게임의 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중국의 지적재산권침해도 조사하면서 중국을 압박한데 이은 2탄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22일 값싼 외국산 태양광 패널 제품 수입으로 미국 업체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판정한 게 그것이다. 중국 태양광 전지 업체들은 미국 업체의 대주주로 등극하는 등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25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ITC는 4월 ITC에 소송을 제기한 조지아주의 패널 제조업체 서니바와 이에 합류한 솔라월드어메리컨스의 손을 들어줬다. 솔라월드어메리컨스는 독일 패널 제조회사의 미국 자회사다.

서니바는 솔라셀 1 와트당 40센트의 관세를 매기고 패널 1와트당 최저 판매가를 78센트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판매가는 전세계에서 와트당 약 32달러 수준인데 값을 두 배 이상으로 올리라는 주장이다.

ITC는 다음조치로 다음 달 3일 2차 공청회를 열어 관련 업계와 정부 의견을 들은 뒤 무역법 201조에 따라 11월 13일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세이프가드 적용 등 권고안을 제출한다.

세이프가드란 특정 품목의 수입 급증으로 자국 산업이 피해를 봤을 때 관세 부과 등을 통해 수입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미국에서 지난 15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국산 등 수입 철강제품에 8∼3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ITC의 권고를 받은 후 국익을 따져 내년 1월12일까지 해당 품목의 관세 인상, 수입량 제한, 저율관세할당(TRQ·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매기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미국 태양광 패널 산업의 명운이 트럼프의 손에 달린 것이다.

트럼프가 관세부과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지식재산권 정책 조사개시 결정에 이어 중국을 겨냥한 두 번째로 의미심장한 보호조치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세계 최대 태양광 시장인 미국 시장을 장악한 중국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제품’을 무기로 미국은 물론 세계 태양광 패널과 모듈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의 태양광 전문매체 PV테크가 주요 태양광 셀 업체의 지난해 생산량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위권 안에는 중국 업체가 대부분인 실리콘모듈슈퍼리그(SMSL) 7개 회원사 중 5개사가 포함됐다. SMSL은 캐나디안솔라와 JA솔라, 징코솔라, 트리나솔라, 시안론지실리콘머티리얼스, GCL, 한화큐셀 등 총 7개 회원사로 구성돼 있다. 한화큐셀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계 회사다.

태양광 셀 생산량 1위는 한화큐셀이며, 2위는 JA솔라며, 3위는 트리나솔라다. 4위는 미국의 퍼스트솔라, 5위는 징코솔라, 대만의 모테크솔라가 6위다. 7위부터는 모두 중국계인 통웨이솔라와 잉리그린, 캐나디안솔라, 슌펑인터내셔널이었다.

슌펑인터내셔널이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서니바의 대주주다.

트럼프가 세이프가드 조치를 선택한다면 중국 업체도 타격을 입겠지만 미국도 상당한 내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태양광 산업이 낮은 패널 가격에 힘입어 29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것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일부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관세부과와 최저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미국 태양광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미국 상·하원 의원 69명은 지난 8월11일 ITC에 보낸 서한에서 세이프가드가 미국 태양광산업 종사자와 기업들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은 관세 등 보호무역조치로 "태양광 산업의 성장이 위축되거나 멈추면서 미국 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면서 "관세를 부과하면 내년 태양광 일자리 8만8000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태양광산업협회(SEIA)도 ITC에 보낸 서한에서 세이프가드가 미국 업체들의 비용을 높이는 등 "태양광 산업 전체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반대했다. 관세부과시 태양전지 패널과 모듈값이 올라 태양광 산업 자체가 파멸을 맡이 하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가 최종가 관세카드를 꺼낸다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데 중국의 협조가 절대로 필요한데 작은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은 소탐대실이라는 것을 트럼프도 모를리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