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특성상 많은 보도자료를 받습니다. 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보도자료는 취재와는 별개의 콘텐츠라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많은 양을 소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써도 티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저 개인은 보도자료에 삐쳐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눈길을 사로잡는 보도자료가 있습니다. 당연히 추가취재를  해 공을 들이고, 또 이곳저곳 알아보기도 합니다만 높은 확률로 티나지 않아 역시 삐쳐있습니다.

 

오늘은 저를 삐치게 만드는 보도자료의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보도자료야 말로 회사의 공식입장이자 중요한 포인트죠. 그런 키워드가 언제 나오느냐도 상당히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네, 보도자료의 타이밍에서 나오는 ‘오비이락의 묘미’로 표현할게요.

SK텔레콤이 21일 재미있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시속 80km로 SK텔레콤의 자율주행차가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는 내용입니다. 이런거 신차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해 현대기아차가 하는 것 아닌가요? 미국의 테슬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통신사 SK텔레콤도 합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자율주행차는 차량 통제없는 실 주행환경에서 주변 교통 흐름에 맞춰 시험 주행을 안전하게 마쳤다고 합니다. 최고속도 시속 80km, 평균속도는 시속 47km였으며 주행시간은 약 33분이었습니다. 자율주행 면허로 허가 받은 최고속도는 시속 80km로, SK텔레콤은 허가속도를 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를 설정했다고 합니다. 이 차에는 연구원 과 일반인 등 2명이 탑승해 주행 과정을 지켜봤어요. 사고가 났다면 보도자료가 없었겠죠? 재미있고 의미있는 자료입니다.

▲ SKT 자율주행차. 출처=SKT

그리고 22일, 이번에는 KT가 나섰습니다. 국내 최초로 국토교통부의 자율주행버스 운행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KT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토교통부 인증을 획득한 자율주행차량은 수 십대에 이르나, 버스는 승용차와는 다르게 자율주행 기능 개발이 어려워 버스로 자율주행 허가를 받은 것은 KT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버스는 승용차와는 달리 핸들, 브레이크 등 차량 주요 부품에 전자식 제어기능이 구현되어 있지 않고, 센서부착 위치가 높아 차량 주변의 사물을 정확히 인지하기가 어려워요.

21일 SK텔레콤의 발표, 22일 KT의 발표는 서로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KT에 문의해보니 “허가는 21일 받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21일 허가를 받았으면 22일 발표할 수 있죠. 21일 SK텔레콤이 자율주행차 주행에 성공하자 22일 KT가 “우리는 더 어려운 자율주행버스 운행 허가를 받았다!”고 외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다만 재미있는 타이밍인 것은 분명합니다.

▲ KT 자율주행버스. 출처=KT

부연하지만 21일과 22일, 네이버가 자율주행차의 야간주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보도자료는 아니었어요. 이것도 그냥 타이밍이 참 대단하구나 싶은 정도로 이해합시다.

생각해보니 네이버와 카카오도 비슷한 사례가 있네요.

네이버는 지난 14일 인공지능 스피커 웨이브 2차 이벤트에 돌입했습니다. 14일 낮 12시부터 네이버 뮤직 무제한 듣기 1년 이용권(9만원, VAT 별도) 구매 조건으로 4만원에 판매한다고 보도자료를 냈어요. 그런데 타이밍이 참 묘한 것이 카카오미니가 18일부터 예약판매에 돌입한다는 보도자료가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 웨이브 2차 이벤트 보도자료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웨이브의 가격은 5만9000원보다 약간 저렴한 4만원.

물론 양쪽의 인과관계는 공식적으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보도자료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업들의 총성없는 싸움은 노트북의 하얀 지면 아래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구나’는 느낌입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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