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를 옥죄오던 미국의 통상압박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올까.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논의했던 ‘무역확장법 232조 발령 행정명령’ 대상 국가에 한국이 포함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내 철강제품도 중국처럼 ‘관세폭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역확장법 232조'로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선 미국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미 철강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령하는 내용의 행정각서에 서명했다. 미 상무부는 4월 27일 조사를 개시했고, 행정명령이 발동되면 상무부는 미국 무역법에 따라 270일 내에 수입하는 철강제품이 미국 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사해야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상무부의 조사가 마무리된 후 90일 내에 어떤 품목을 제한하고 얼마나 관세를 부과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행정부가 전적으로 과정을 통제하기 때문에 의회나 국제무역위원회의 산업 피해 조사를 필요로 하지 않고, 미국 내 항소나 WTO를 통한 항소를 거치지 않고도 수입 제한 조치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미 상무부는 보고서에서 철강 수입국을 관세면제(그룹1), 전면관세부과(그룹2), 관세면제와 수입제한(그룹3) 등 3개로 나눴다. 한국은 중국, 베트남 등과 함께 전면관세가 부과되는 그룹2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반면 미국 철강 1위 수입국인 유럽연합(EU)와 2위 캐나다, 4위 멕시코 등은 그룹1에 포함돼 관세를 면제받는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철강 수입 3위국가다.

철강 대미수출 3위국 한국, 위기 커지나

한국 철강업계에 드리운 그림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점점 짙어져왔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의 주요인으로 한국산 철강수입을 꼽으며 정부차원의 조치를 논의해왔다. 지난 7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발효 이후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적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대표적인 불공정 무역 분야로 자동차와 철강을 꼽았다.

미국 철강업계는 당초 6월이나 7월 중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발표가 늦어지면서 미 정부 압박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한국을 방문한 토마스 깁슨 미국철강협회(AISI) 회장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언급하며 수입 철강에 대한 제한을 촉구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고 밝혔다. ASIS는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이 전달보다 25% 증가한 41만 8000톤을 기록했으며 시장 점유율 역시 2년여만에 최고 수준인 30%에 이르렀다며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한국 철강업계의 피해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6월 발행한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이 우리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수입제한조치를 시행할 경우 상대교역국의 보복무역, WTO 항소와 같은 위험요소를 끌어안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7월 발행한 ‘미일 FTA에 따른 한국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한미 FTA재협상으로 철강업계가 5년간 3조2000억원에 가까운 수출손실을 입을 것이라 분석했다. 보고서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이중 관세 인하 정지로 인한 손실이 8200억원, 생산 손실이 2조원, 부가가치 손실이 3700억원에 달하며 약 4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 밝혔다.

현재까지 미 당국의 정확한 발표는 없다. 미국은 지난 2일 백악관 대변인 발표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한국과의 토의가 진행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곧 발표할 예정”이라며 답변을 미룬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시점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를 시행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