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에는 T500이라는 정기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터미네이터 이야기가 아니에요. 임직원들이 목요일 오후 5시에 모여 소탈하게 이야기와 소통을 하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름은 뭔가 의미심장하지만 알고보면 소탈이 아니라 허탈합니다.

20일 오후 5시 카카오가 T500에 기자들을 초대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카카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문화를 느끼게 만드는 한편, 2% 부족하지만 은둔의 경영자 소리를 듣는 임지훈 대표의 스킨십을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정해진 시간도 없고 무차별 질문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게다가 임 대표는 취임 직후 제주도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기자들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에요.

행사는 순조로웠습니다. 아쉬운 점은, 카카오는 매우 실리콘밸리스러운 이벤트를 생각했을 텐데, 기자들은 그냥 기자회견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임 대표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하면 기자들은 노트북 타자에 집중하는 익숙한 패턴. 맥주 한 잔 하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별도의 보도자료가 없다고 공지됐지만 기자들이 너무 딱딱하게 나오니 행사 중반 카카오에서 ‘스크립트 드릴게요’라고 하더군요. 타자 그만치고 즐기라는 뜻인데,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각자 자비로 강화도에서 만납시다. 거기서도 기자들이 타자만 칠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카카오는 어떤 기업이다?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말하겠다’는 행사취지에 맞게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너무 많은 질문이라 분류도 어렵네요. 그래도 인상적인 것들만 꼽아보겠습니다.

조직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임 대표가 처음 카카오에 왔을 때 카카오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였거든요. 지금은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 임 대표는 “외부에서 온 처지라 처음에는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집단경영체제가 사라진 후 임 대표는 주요 사업부를 분사하게 됩니다. 그는 “분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면서 “카카오페이가 알리페이와 만나지 않았으면 분사하지 않았을 것이고, 모빌리티의 미래가 없다면 굳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어요. 나아가 송지호 센터장을 국내로 불러들인 것도 수단에 불과한 분사를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직운영에 대한 질문에는 ‘임지훈 대표 위기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임 대표도 잘 알고 있더군요. 그는 “초창기 앞으로 나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을까. 임 대표는 “초기 카카오의 실적이 부진했던 상태에서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카카오의 실적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은 예전에 우리가 잘했기 때문이며, 앞으로는 많은 스킨쉽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에 대한 위기설을 불러온 ‘은둔의 경영자 컨셉’에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외 준대기업집단 총수지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우리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진출에 대해서는 “카카오톡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면 잘 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는 충격적인 멘트와 함께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콘텐츠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답했습니다. 포도트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로엔과 같은 대형 인수합병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는 “잘 모르지만 꾸준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했으며 카카오미니 판매나 가끔 벌어지는 카카오톡 먹통 등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보였습니다. 카카오뱅크 등을 위시한 금융과 ICT의 만남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으며 글로벌 ICT 기업과의 오래된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2015년 12월 종료된 클라우드처럼 다소 무차별적으로 보였던 서비스 종료에 대해서는 임대표는  “당시 내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면서도 선택과 집중의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포털 다음을 매각하거나 이름을 ‘카카오’로 변경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신중했습니다. 임 대표는 시너지를 위해 다음과 카카오톡 모두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어요. 최근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함께 부각되고 있는 카카오예약전송에 대해서는 “이미 기능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며 “카카오톡 금지법,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다소 불편한 심경도 보였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질문. '카카오 대표를 해보니 어떤가?'라는 질문에 임 대표는 “반복되는 일상에 힘이 들 때가 많다”면서도 “신나는 일과 힘든 일이 공존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임지훈 대표. 출처=카카오

인공지능과 O2O

임 대표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눈을 반짝였습니다. 우선 김범수 의장이 이끌고 있는 카카오브레인과 내부의 카카오AI의 상관관계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카카오브레인은 연구개발, 논문작성, 인공지능을 활용한 큰 그림을 그리는 조직이고 카카오AI는 실제 카카오톡에 적용되는 인공지능 플랫폼 활용법을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 빅스비, 현대차와의 제휴 등에 대해서는 “파트너와의 계약 때문에 자세한 부분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O2O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분사된 카카오 모빌리티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임 대표는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습니다. 카카오택시와 카카오드라이버 등 다양한 모빌리티는 이동의 수단이며, 여기에 수반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실타래를 풀었다고 합니다. 카카오택시는 어려운 택시잡기, 카카오드라이버는 대리기사업의 불공정한 계약 등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풀어가는 쪽으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매우 재미있는 사업 접근법입니다. 일정정도 공익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에도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카카오택시는 기사들과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서 수월했지만 카카오드라이버는 약간 어려웠다고 합니다. 임 대표는 “대리운전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업에 진입하면 일이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정말 많은 소송과 충돌이 있었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에요.

행사가 진행되며 ‘카카오의 방향이 O2O에서 인공지능으로 크게 쏠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마트 모빌리티가 분사되며 카카오페이, 포도트리 등과 동일선상에 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이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 카카오는 O2O 기업이 아니라 인공지능 플랫폼 기업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야할 대목이 있습니다. ‘카카오가 O2O 기업이었을까?’ 당연히 ‘맞다’고 말할 수 있지만 더 내밀하게 접근하면 ‘플랫폼 기업’이 맞고, 더 들어가면 단순하게 ‘카카오톡 기업’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수요와 공급을 맞추며, O2O 플랫폼 사업을 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카카오톡에 카카오택시와 카카오페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하며 수요와 공급이라는 양쪽의 균형을 맞추며 이를 철저하게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가져갔다는 뜻이에요. O2O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오로지 생활밀착형 플랫폼 서비스. 그리고 핵심은 카카오톡입니다.

최근 카카오가 인공지능 카카오 I의 행보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합니다. O2O가 아니라 플랫폼, 카카오톡,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목적이라면 인공지능은 역시 다양한 영역에 녹아들 수 있는 매력적인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카카오 입장에서 인터페이스의 종류에 불과한 카카오미니 스피커의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설명이 되고, 공개된 카카오 I 에코맵에 왜 인텔 인사이드를 연상하게 만드는 카카오 인사이드가 들어가는지도 명확해집니다.

맞습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기업이었습니다. 당연히 O2O는 중요한 원동력이지만 목표가 될 수 없었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이 일정정도 차지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다시 생각해보면 카카오는 직접 O2O 서비스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좋은 파트너를 만나 플랫폼 지위에서 연결하는 것에만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O2O 전략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임 대표의 발언이 더욱 의미심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T500 현장. 사진=이코노믹리뷰 DB

마지막으로 하나 더. ‘모른다의 경영학’

T500에서 임 대표는 자주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파트너와의 계약에 따라 ‘노코멘트’도 나왔으나 모르는 것은 정말 모른다고 했어요. 클라우드 서비스가 왜 종료됐는지는 당시 카카오에 있지 않아서 모르고, 카카오뱅크의 기업금융 진출에는 기업금융 자체를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를 알고 싶으면 카카오에 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싶다”고 했습니다.

기자 입장에서 ‘잘 모른다’고 말하는 취재원은 기피대상 1호입니다. 임 대표의 ‘모른다’에는 묘한 이유가 보입니다. 조직경영과 관련이 깊은데, 더 나아가면 임 대표 위기설과도 연결됩니다.

임 대표의 위기설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조직제어가 어렵다’입니다. 여기에 대한 임 대표의 해명은 무엇일까요? ‘대표는 조직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수장들을 움직여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임 대표가 특정 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한 것이 설명이 됩니다. 철저하게 부문장에게 맡겼기 때문이겠죠.

앞으로 임 대표의 카카오가 어떻게 될까요? 최근 실적이 좋아지고 있지만, 이 역시 언제 성장세가 꺾일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카카오의 로드맵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요. 결국 카카오가 하기 나름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카카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