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Toshiba)가 도시바반도체 사업 인수자로 SK하이닉스가 있는 ‘한미일 연합’을 최종 선택했다. 지난 2월 이후 계속된 치열한 매각 공방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한국 업체에 기술이나 경영권을 넘기는 것을 꺼리던 도시바는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도시바는 그간 반도체 자회사 매각을 두고 두 연합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계속해왔다.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Bain Capital)이 주도로 SK하이닉스, 애플, 일본 관민펀드 등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과, 도시바와 합작사를 운영 중인 미국 하드디스크업체 웨스턴디지털(WD) 중심의 미일 연합이 그것이다. 여기에 대만 훙하이 정밀공업(폭스콘)이 무려 3조엔을 매각 가격으로 제시하며 도시바 매각은 삼파전으로 전개됐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20일(이하 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일부 일본 정부 관료들은 중국기업이나 한국기업과의 거래가 일본 기술을 해외로 유출시킬 것이라 믿고 있다”면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동맹국인 미국의 웨스턴디지털 측에 매각 힘을 실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국민 정서 역시 한국이나 중국보다는 미국에 우호적인 것도 한 몫 했다. 1990년대 메모리반도체의 최강국이었던 일본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서 한미일연합이나 훙하이가 아닌 미일연합의 우세를 점친 이유다.

그렇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최종 인수자는 한국 기업이 속한 한미일연합으로 드러났다. 도시바는 왜 한미일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로이터 등 외신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지만 대체로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매각 주요 일지.출처=이코노믹리뷰DB

①도시바는 시간이 부족했다?

도시바의 경영난은 201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도시바는 2015년 7월 회계부정 의혹에 휩싸이며 다나카 히사오 사장 등 임원진이 불명예 퇴진했고, 같은 해 12월 직원 1만명을 구조조정하고 플래시메모리 부문의 분사를 검토하는 등 굴욕을 당했다. 이듬해 도시바의 원자력발전 사업부 손실 은폐 사실이 적발되며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부문을 미국 WD에 매각하는 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영 악화에 시달렸다.

이런 도시바의 경영악화가 매각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하게끔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도시바는 낭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이번달 매각을 성사시켜야 했다”고 분석했다.

도시바는 그간 금융회사로부터 거래를 조속히 성사시키라는 압박에 시달려왔다. 회계연도 말인 내년 3월 까지 매각을 완료해 규제 검토를 위한 충분한 시간(보통 6~9개월 소요 예상)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년 3월 말까지 매각하지 못할 경우 적자를 내면, 도시바는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높고 최악의 경우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②애플이 변수였다?

이번 도시바의 결정에 애플의 합류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7월까지도 도시바의 반도체 자회사 매각의 향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도시바가 한미일연합 외 미국, 대만 측과도 협상 중”이라고 보도했는데, 삼파전의 어느 한 쪽으로도 힘을 싣지 않는 모호한 모습이었다.

애플은 지난달 말 한미일연합에 전격 합류하며 상대 진영인 미일연합을 강하게 압박했다. 특히 WD에 “도시바 장악시도를 중단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WD에 매각하면 도시바로부터 메모리반도체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애플은 도시바를 포함한 IT업계 최대 구매자로, 애플의 엄포 이후 일본 경제산업성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③WD의 협상력 부족?

WD는 도시바와 반도체 사업 부문 합작 관계에 있는 미국의 하드디스크 생산 업체다. WD는 지난해 샌디스크를 인수하며 샌디스크가 갖고 있는 도시바 최대 생산 공장인 요카이치 공장 지분도 함께 얻었다. 그러나 도시바가 반도체 부문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WD는 합작사로서 우선협상권을 요구했고, 도시바가 이를 거부하자 번번히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이후 WD가 미국계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 일본 산업혁신기구(INCJ), 일본정책은행 등과 연합해 도시바에 적극 구애 작전을 펼쳤고, 막판 WD가 도시바반도체의 의결권을 포기하겠다고 파격 제시하는 등 도시바 매각 과정에 큰 변수가 됐다.

최종 한미일연합의 결정으로 그간 도시바와 WD간의 뿌리깊은 갈등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