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털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20일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에 성공했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이후 벌어질 낸드플래시 시장의 변화와 함께 예상할 수 없는 파급력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낸드플래시 시장 변화에는 ‘이견’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 인수에 성공한 후 업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낸드플래시 시장 판도의 변화로 좁혀지고 있다.

의견이 갈린다. 우선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위는 38.2%의 삼성전자다. D램에서는 50%를 넘기고 있으나 낸드플래시에서는 다소 헐거운 장악력을 보유한 셈이다.

그럼에도 경쟁자를 압도하기에는 충분하다. 2위 도시바는 16.1%, 웨스턴디지털(WD)은 15.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D램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10.6%의 점유율로 5위에 머물러 있다.

 WD와 도시바가 만났다면 합산 점유율은 32%에 육박한다. 38.2%의 삼성전자 뒤를 바짝 추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의 합산 점유율은 26.7% 수준에 그치고 그 나마도 단순합산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SK하이닉스는 한미일 연합에 지분 투자가 아닌 융자형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인수에 큰 위협을 받지 않고 여유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SSD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3% 안팎에 불과하다.

기술격차도 상당하다. 시장 점유율로 보면 삼성전자가 38.2%, 도시바가 16.1%이지만 공정 인프라로는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4세대 3D 낸드플래시로 5세대로 넘어갔으나 도시바는 여전히 3세대에 머물러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에서야 4세대 3D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 압도적 기술격차 덕분에 이번 인수전의 결말을 보면서도 삼성전자는 느긋하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8일 미국 산타클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17(Flash Memory Summit)'에서 세계 최대용량의 V낸드와 차세대 SSD 솔루션을 선보였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3차원 셀(Cell)' 용량을 기존 512Gb보다 2배 늘린 '1Tb 낸드'가 눈길을 끌었다. 16단을 적층해 하나의 단품 패키지로 2TB를 만들 수 있어 SSD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 1Tb V낸드. 출처=삼성전자

이에 힘입어 신규 SSD 규격인 NGSFF SSD도 베일을 벗었다. 서버 시스템 내 저장장치의 공간활용도를 극대화 할 수 있으며 기존 M.2 SSD로 구성된 시스템을 NGSFF SSD로 교체하면 최대 4배의 저장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중장기 낸드플래시 시장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시안에 향후 3년간 약7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기도 했다. 이미 경쟁자와 기술격차를 상당히 벌린 상태에서 아예 추격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다.

다만 애플이 변수다. 한미일 연합에서 사모펀드인 KKR이 나가고 새롭게 합류한 애플은 도시바의 주요 거래처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한미일 연합에 참여하며 도시바에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인수하지 못하면 앞으로 도시바 낸드플래시를 공급받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한미일 연합의 인수 성공에 결정적인 수훈을 담당했다.

미묘한 대목은 애플이 한미일 연합을 통해 안정적인 낸드플래시 수급을 확보하면서, 또 다른 거래선인 삼성전자와 가격협상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낸드플래시를 사용하는 기업”이라면서 “한미일 연합 참여를 통해 안정적인 낸드플래시 수급에 성공하면 삼성전자와의 가격협상에 우위에 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X에 OLED 패널을 수급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지루한 협상을 벌인 일이, 최소한 낸드플래시에서는 재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에 스토리 텔링이 있다”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에 대한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다만 최태원 SK 회장을 중심으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으로 이어지는 ‘하이닉스 본능’은 그 자체로 호평이 많다.

최 회장은 출국금지 조치가 풀린 4월26일 곧장 일본으로 날아가 도시바 임원들을 만났고, 이후 벌어지는 인수전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015년 8월 M14 준공식에서 선언한 낸드플래시 중장기 투자계획의 연장선에서 도시바 인수전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무려 46조원을 투입해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M14를 포함한 총 3개의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이는 지금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자체도 최 회장의 뚝심으로 이뤄진 뚝심의 결정체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세운 국도건설(주)을 전신으로 삼고있는 SK하이닉스는 1983년 현대그룹이 국도건설(주)을 인수하며 현대전자산업(주)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후 현대전자산업(주)은 1985년 256Kb D램을 만들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략을 알렸고 2001년 3월 회사 이름을 현대전자에서 (주)하이닉스반도체로 바꿨다.

2004년 (주)하이닉스반도체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모기업이 없이 원천적인 성장 동력을 높이기가 힘들었다. 바로 그 때 SK가 나섰다. SK텔레콤이 2011년 11월 채권단에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2012년 2월14일, SK가 드디어 (주)하이닉스 반도체를 손에 넣었다.

그 치열한 복마전에서 핵심으로 활동한 주인공이 최 회장이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인수 후 “밤을 지새워 반도체를 공부하겠다”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대한 열의를 불태워 회자됐다.  그리고 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 성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