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한 영화 <아이, 로봇(I, Robot)>의 배경은 로봇이 발달한 2035년이다. 형사로 분장한 주인공 윌 스미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로봇을 취조하며 내뱉은 말이다. “너는 사람을 모방한 기계일 뿐이야.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하니? 화판에 명작을 그려낼 수 있니?” 그러나 로봇이 무심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넌 할 수 있니?” 섬뜩하게 다가왔던 장면이다. 인간만이 상상력을 타고난 역량이 있다고 믿었지만 컴퓨팅 능력의 발전으로 건축, 음악, 영화, 소재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계가 이미 인간의 독창성과 품질을 능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공지능이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쓴다고 하는데 인공지능이 예술작품의 원작자로 이 세상 판권을 모두 거머쥐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인공지능이 예술활동을 한다?

소니컴퓨터과학연구소(Sony CSL)는 20년 전에 컴퓨터음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음악 팀을 개설했다. 리더인 프랑소아 파쉐(Francois Pachet)는 재즈 뮤지션이다. 이 팀은 음악을 컴퓨터로 묘사하는 기술적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 특성을 추출하는 기계학습 그리고 추출된 기준 스타일을 사용자가 제시하는 임의의 제약 요소들에 적용해주는 최적조합기술을 활용한다. 물론 최종 작품을 독특하게 표현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이 팀이 유럽 연구위원회(ERC)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개발한 기술들 중 대표적인 작품은 문학작품, 음악 그리고 미술품들의 스타일을 모방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플로우 머신(Flow Machine)이다. 플로우 머신은 자율적으로 또는 인간 예술가와 협력해서 새로운 예술작품을 생성해내는 인공 지능 시스템이다. 거장의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거나 편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을 바흐(Bach)나 비틀즈(Beatles) 또는 다른 아티스트 스타일을 주문하면 전혀 다른 장르의 ‘섬마을 선생님’이 탄생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고흐나 피카소 스타일로 창작해주도록 부탁할 수 있다.

명장의 화풍을 닮은 그림을 그리고, 명배우의 얼굴 표정을 재현하고, 무용수의 섬세한 동작을 묘사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인간 요리사처럼 독특한 요리법을 고안하는 로봇 또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컴퓨터가 재현하는 예술 활동들을 독창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단순한 형식 차용일 뿐 창조는커녕 혁신으로 평가해주기도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아이비엠(IBM)은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적이 창의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팝 아티스트를 흉내 내서 작곡하고 위대한 화가들의 스타일을 흉내 낼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인공지능이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진정한 창작활동을 할 만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논하기 전에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디지털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인간의 표현과 대립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IBM은 2016년에 20세기 폭스사와 함께 공포영화인 <모건(Morgan)>의 예고편을 최초로 AI에 의존해서 만들었다. IBM 왓슨(Watson)은 기존 공포영화 수백편의 예고편 영상, 음향과 구성을 분석해 예고편 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파악한 후에 <모건>의 영화 장면을 대입해주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통상 예고편을 만드는 일은 10일 내지 30일이 걸리는데, 왓슨이 <모건>을 처음 본 순간부터 영화 제작자가 최종 편집을 마칠 때까지 약 2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예고편 영화의 작품성은 논외로 하고, 이 과정에서 20세기 폭스사가 노린 점은 AI가 영화 예고편을 제작했다는 내용의 바이럴 마케팅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의 역할은 심층학습을 통해 수천 장의 장면들을 익히고 이를 매개변수로 삼아 비슷한 장면들을 <모건>에서 찾아내는 것이고 나머지는 전문 인력이 최종 마무리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AI와 전문 인력의 합작품이다. IBM의 멀티미디어 개발팀의 존 스미스(John Smith)는 “인공지능이 무작위로 소설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다” “깊은 학습은 창의성에 대한 해답이 아니지만 영화 <모건>의 경우는 새로운 시도로서 가치가 있다”며 “창의성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창의성을 배울 수 있나?

전문가들은 컴퓨터로 가능한 영역을 겉핥기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컴퓨터에게 창의성을 어느 정도나 가르칠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묻지만,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감각을 가질 만큼 발달할 수 있겠느냐고 고쳐 묻는다. 인간의 도움 없이 인공지능이 창조력을 발휘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느냐가 질문의 핵심이다. 예를 들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픽셀들의 배열이나 컬러 팔레트를 보고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겠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답은 최근에 미국 첨단방위연구계획(DARPA)이 발표한 인공지능 관련 슬라이드 자료를 보면 확실히 이해된다. 이 슬라이드엔 충분히 심화학습을 한 인공지능에게 판다(Panda) 사진을 보여준 후, 이 사진의 픽셀들에 디지털 데이터 외란을 1% 가미한 상태로 판다 사진을 변형해 보여주자 이를 99.3%의 신뢰도로 긴팔원숭이(Gibbon)로 인식한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이 두 사진은 사람의 눈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판다 사진들이다. 즉, 컴퓨터가 인식하는 그림은 우리가 보는 아날로그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구성하는 픽셀의 디지털 숫자들의 조합일 뿐이다. 아무리 심화학습을 한다 해도 디지털 데이터 학습형 인공지능만으론 오류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맥락을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럽연합이 이유를 설명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도입한 배경이기도 하다.

IBM의 아빈드 크리쉬나(Arvind Krishna)는 음악의 선율이나 장면의 아름다움이 비록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인공지능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가 충분히 학습할 수 있을 만큼 데이터를 공급해주고 ‘이것은 아름답다’ ‘이것은 별로다’ 하는 식으로 구분해주면 그대로 학습이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컴퓨터가 아름다운 영역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그는 장담한다. 전문가들은 컴퓨터가 창의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일은 인간이 창조하는 법과 본질적으로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창의적인 방법을 구사하는 두뇌작용을 모르기 때문에 별도로 그런 작용이 발현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업체인 소마틱(Somatic) CEO인 제이슨 토이(Jason Toy)는 인공지능을 직접 다루는 기술자인데, “컴퓨터 알고리즘에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창의성을 집어넣는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고 비관적으로 말한다.

많은 경우에서 창의력은 한 가지 계층 스타일로 학습하고 탐구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능력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기법이 제공하는 신경망이나 다층망 시스템이 이런 계층구조를 좀 더 이해하도록 다양한 틀을 제공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컴퓨터가 오선지 위에 여러 가지 음표들을 그려준다 해도 이를 다루는 사람이 충분한 통찰력과 시간이 없다면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 결국 재능 있는 예술가만이 컴퓨터가 무작위로 정리해놓는 편집 결과를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췌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예술작품의 95%는 기능이고 과학이며 나머지 5%가 진정한 창의력이란 말이 된다.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반적으로 기업의 경영자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사람의 지시나 감독 없이도 문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길 원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만 한다. “과연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이 못하는 일을 창조하도록 위탁하는 일인가?”

그 누구도 기계가 아니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원하진 않는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목적은 인간의 창의력을 일깨울 수 있는 기법들을 갖고 싶어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두뇌가 창의적 발상을 하는 과정이나 계기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그걸 알게 되면 그런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빈번하게 두뇌자극을 주면 된다. 인공지능의 역할은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IBM 왓슨 담당 부사장인 롭 하이(Rob High)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 속에서 창조적 발상을 하도록 영감을 자극해줄 수만 있다면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창조력 증강효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창조적인 존재이다. 얼마만큼 창조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영화 제작에서 99%의 촬영 작업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작업이고 한 토막 핵심 장면을 연출해내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인간의 역할은 마지막 1%를 영감으로 채워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99%의 기술과 1%의 영감이 협력하는 시대가 바로 인공지능 시대다.

인공지능 기술은 기계학습에서 패턴인식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모든 산업에서 가상 지원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건강관리, 금융, 통신, 도소매 유통에서 시작된 물결이 교육, 교통, 에너지, 정부 서비스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창의성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하는 측이 이 게임에서 이긴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면 사람들의 일처리 방식이 효율적이고 신속해진다. 그렇게 되면 이전엔 기대하지 못했던 창의적 발상들이 난무해 비즈니스가 도약하는 돈벼락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