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커피숍. 중년의 여성을 앞에 두고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젊은 남녀가 여성에게 이것저것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남녀는 팜플렛처럼 잘 정리된 자료를 손에 들고 뭔가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모양새인데, 설명을 듣던 중년의 여성은 자주 말을 끊으며 질문을 던지는 얼굴 표정엔 진지함이 역력했다. 남자가 "조합원을 위해서 가장 전망 좋은 동(棟)과 '로얄층'을 배정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 서울 반포 주공1단지 인근의 시공사 홍보물. 출처=이코노믹리뷰 DB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의 재건축 시공권을 두고 GS건설과 현대건설이 사활을 걸다시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 건설사 영업사원들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1대1 설득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지하철 구반포역과 단지 곳곳에 재건축 사업 수주를 위한 두 회사의 홍보물이 수도 없이 걸렸다. 홍보물들은 자사의 사업계획에 대한 홍보와 경쟁사에 대한 비방까지 난무했다.  

인근 K공인중개업체 대표는 “말도 마시라. 두 시공사 직원들이 ‘뒤질세라’ 중개소마다 들러 밥도 사주고 자신들을 홍보한다. 홍보물을 붙여달라고 해서 붙여주기도 했고, 기자들이 올 수 있으니 입단속하라는 조언도 들었다”고 전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인 반포주공1단지를 놓고 대형 건설사들이 사활을 건 시공권 전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현재 2120세대(전용면적 84~196㎡) 규모로,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지하 4층~지상 최고 35층, 5388세대(전용 59~212㎡)의 한강변의 초대형 단지로 재탄생한다.

재건축이 따로 진행되지만 같은 단지인 반포주공1단지 3주구도 진행 속도가 빨라 최고 35층 17개동에 2091가구로 재건축 되면, 두 지역을 합쳐 총 7000세대가 넘는 미니 신도시급 대단지가 된다. 고급 주택지역에다 초대형 단지 건설에 수익도 엄청난데다 자신들의 브랜드 깃발을 높이 올림으로써 홍보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3년 공 들인 GS건설 

강남권 최대 규모이면서 한강변에 입지해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제외하면 서울 재건축 아파트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지로 꼽히는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조합과 건설사가 공동사업시행 방식으로 진행한다.

지난 7월 건설사 선정 현장설명회에는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이 참석해 눈치작전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과 GS건설 외에도 롯데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SK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사실상 삼성물산을 제외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모두 참석했다. 반포 1단지 조합 측은 지난 4일 입찰을 마감하고 오는 27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조합원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선정한다.

‘기호 1번’ GS건설은 오래 전부터 이 단지에 눈독을 들여왔다. GS건설은 3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반포주공1단지를 '자이 프레지던스'로 재탄생시키겠다며 1500억원에 이르는 입찰보증금을 내고 입찰서를 제출, 기호 1번을 차지했다. 

반포는 GS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자이’가 선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 12월 입주한 최고 29층, 44개동, 총 2991가구 규모의 반포자이 아파트는 지금도 반포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로 통한다. 

자이 브랜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높은 선호도를 기록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를 대상으로 조사한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GS건설의 '자이'가 31.4%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반포동 H공인중개업체 관계자도 "조합원 중에서도 젊은 층은 '자이'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외관 디자인이 우수하고, 설계에 포함된 '인피니티 풀' 등에 대해서도 호감을 드러낸다"고 전했다.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은 특별히 하늘 등 자연과 시각적으로 경계가 없는 것처럼 설계한 수영장을 말한다. 보통 고급 리조트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이다. GS건설은 국내 최대의 규모인 스카이 브릿지를 5개나 설치하고, 35층 인피니티 풀장 2개, 15층에 어린이용 풀장 2개, 게스트하우스 4개 소 등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건축디자인 회사인 SMDP의 수석 디자이너 스콧 사버가 디자인에 참여한다.

▲ 서울 반포 주공1단지의 모습. 출처=이코노믹리뷰 DB

뿐만 아니라 GS건설은 이 단지에 국내 최초로 0.3㎛이상의 미세먼지를 99.995% 제거하는 'H14급 헤파 필터를 적용한 '중앙 공급 공기정화시스템’을 적용히고 ‘에어 샤워룸’까지 갖춰 초미세먼지 없는 단지로 만든다고 공언했다.

또한 카카오와의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스마트홈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으며, 업계 최초로 13.3인치의 대형 LCD 화면에 스마트폰과 동일한 안드로이드OS를 탑재한 최첨단 월패드, 인공지능 스피커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단지 내 동간 거리를 30~65m 이상 배치하고 최대 3500가구(창문 조망 포함)가 한강 조망을 할 수 있게 했다. 정남향 비율도 60%에 달한다. 가구별 맞춤형 디자인도 제공한다. 국내 최초의 자이 이중창 커튼월 시스템을 적용해 개방감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후발주자지만 '전통의 강호' 현대건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 클래스트’라는 단지 명으로 반포주공1단지 시공권 전쟁에 출전했다. GS보다 늦게 입찰서를 제출한 현대건설이 화제가 된 건 조합원 가구당 7000만원의 이사비를 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한 사건.  

이에 GS건설의 자문의뢰를 받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고액의 이사비 제공이 도시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1조 제5항 제1호에 해당하는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자문을 얻어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현대건설은 공사비가 아니라 자신들의 수익에서 일부를 조합원에 제공하는 것으로, 다른 법무법인 율촌과 세종을 통해 위법성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맞서면서 대형 로펌들의 법리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수주를 위해 관행적으로 이사비를 지원해왔고, GS건설도 다른 사업지에서 수천만원대의 이사비를 제안한 적이 있다. 만약 이 것이 위법이라면 GS건설도 위법을 저질러 왔다"고 주장했다. 

반포주공1단지의 조합원이 2292명인만큼 현대건설이 내놓는 이사비만 총 1644억원에 달한다. 도급공사비 2조6000억원의 16%에 달하는 거액이다.   

현대건설이 파격적인 이사비 지원으로 판세를 바꾼 것. 반포주공1단지의 조합원 A씨는 "사실 현금을 지원하겠다 하는 것만큼 솔깃한 조건은 없지 않나. 공사비, 보상, 금융 등 입찰조건이 거의 똑같은 상황이니까. 원래는 GS건설이 시공할 것이라는 게 기정사실화 됐었지만 지금은 현대건설을 선택하겠다는 조합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반포주공1단지의 재건축 조합원들중 많은 이들은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입을 닫았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40평형대에 거주하는 연령이 높은 조합원들은 이사비가 아니더라도 현대건설의 자금조달력과 신용도, 그리고 시공능력 면에서 신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건설은 2017년 기준 시공능력 평가 2위에 올라 있고, 국내 건설사 중 가장 적은 부채비율과 회사채 AA-의 최상위권신용등급을 자랑한다. GS건설의 신용도(2분기 개별재무제표 기준)는 A-인 것보다 높다. 시공사의 신용도에 따라 시중은행의 대출규모, 금리 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된다고 현대건설측은 주장한다.

이에 대비, GS건설은 이례적으로 수주 전에 이미 KB국민은행과 8조7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조달 협약을 맺고 자금조달계획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GS건설의 독주인 듯 했지만 고액 이사비 지원 약속으로 현대건설이 승기를 쥐었다가 위법성 논란에 휩싸이자 조합원들의 마음은 또다시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반포전쟁' 속내는?

반포주공1단지의 경우 공사비만 2조6411억원, 총 사업비는 7조원에 이른다. 규모나 입지면에서도 우수한 단지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두 개 시공사가 사활을 건 전쟁을 불사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강남권 재건축 시장에서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인근에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이 모두 진출해 있는데 비해 '힐스테이트' 등 자신들이 시공한 아파트가 없어 사업지를 점하고 싶어 이익을 일부 포기하고서라도 이를 수주하려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반포주공 1단지의 경우도 조합원들에게 지원되는 무상 특화계획 비용 안에 책정됐기 때문에 현대건설의 수익에서 지원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개포에서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2단지)’를 분양하고, 방배5구역 재건축 사업에 단독으로 응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두 시공사 간의 수주전이 '제살 깎아먹기'로 변질되면서 제대로 수익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점친다. 둘 사이에서 조합만 득을 보는 '치킨게임'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들이 반포주공1단지 시공권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 '대장주' 압구정 현대아파트 시공권을 최종 목표로 했다는 분석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을 대표하는 최고급 아파트라는 상징성을 가진 아파트로, 아직 재건축 사업 진행은 더디지만 건설사들이 가장 시공하고 싶은 재건축 단지일 수 밖에 없다.

1976년 현대건설이 건설한 이 아파트는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단지로, 현대건설이 시공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앞서 반포주공1단지를 성공적으로 시공한 건설사가 이를 수주하는 데 유리해진다는 계산이다. 

한편 반포주공1단지의 3.3㎡당 분양가는 5000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믹리뷰가 입수한 입찰제안서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조합에 책임보장하기로 한 최저 일반 분양가가 84㎡ 기준 3.3㎡당 5100만원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체는 "반포 지역 아파트의 입주 후 시세는 보통 분양가의 약 2배가 된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 중 평당(3.3㎡) 1억원이 되는 아파트가 반포에서 나올 것"이리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