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화웨이가 애플을 조롱했습니다.  화웨이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에서 짧은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피에로 얼굴이 나와 안면인식을 시도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영상은 '진정한 인공지능 스마트폰이 10월17일 나올 것'이라는 멘트로 마무리됩니다.

 

하반기 출시되는 메이트10을 홍보한 영상인데, 기린970 모바일 AP를 탑재한 메이트10이 진정한 인공지능 스마트폰이라는 주장과 함께 애플의 아이폰X를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왜냐고요? 애플은 아이폰X를 공개할 당시 야심차게 안면인식 서비스인 페이스 ID를 시연했는데, 현장에서 제대로 구동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폰X 공개 행사 당시 크레이그 페더리기 소프트웨어 담당 수석부사장이 등장한  페이스 ID 시연은 말 그대로 '참사'였습니다. 안면인식이 작동하지 않고 패스코드를 묻는 장면이 그대로 생중계됐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대형 이벤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현장에서 고함을 지르지 않았을까요? 화웨이는 이를 제대로 저격하며 자기들의 메이트10이 진짜 인공지능 스마트폰이라는 점을 해학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화웨이의 개그본능을 두고 "우리는 안면인식을 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인공지능 스마트폰을 보여줄 수 있어"라는 일종의 암시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 화웨이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출처=갈무리

페이스ID에 대한 우려, 그리고 걱정

애플이 아이폰X와 애플워치 3세대, 4K 애플TV 등을 연이어 공개한 지난 12일(현지시간) 애플파크의 스티브 잡스 극장으로 돌아가봅시다. 아이폰8은 아이폰7S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아이폰 문법을 충실히 재연했고, 아이폰X는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최초로 LCD 대신 OLED를 탑재하고 패블릿 기조가 심해지는 등 갤럭시 본능이 엿보이는 것은 일단 차치하고, 아이폰X는 분명 지금까지의 아이폰과는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 ID에 집중했습니다. 처음에는 디스플레이 상단의 M자형 데드존(디스플레이가 일부 가리는 지역)이 의아했으나 이는 페이스 ID의 기능을 집어넣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 애플의 설명입니다. A11의 머신러닝 기술이 기본 인프라를 구동시키면 데드존에 위치한 센서 등이 안면인식을 실행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페더리기 부사장이 시연 현장에서 페이스 ID 작동에 여러 번 실패하자 문제가 커졌습니다. 시연 당시 페이스 ID가 제대로 구동하지 않았고 패스코드를 요구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페더리기 부사장은 즉각 다른 아이폰X를 들고 나와 다시 시연에 성공했으나 모자를 써도, 안경을 착용해도 문제없이 안면인식을 지원한다는 페이스 ID에 대한 자랑은 빛이 바래고 말았습니다.

아직 아이폰X가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왜 안면인식 오류가 떴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애플의 해명은 나왔습니다. 페더리기 부사장이 직접 미국의 애플 전문 블로거가 방송하는 방송에 출연해 페이스 ID 시연 불발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해프닝"이라면서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한 아이폰X가 막상 페더리기는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페이스 ID 시연. 출처=애플

무슨 뜻일까요. 애플 개발자 문서를 뒤져보니 자세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이 아이폰X를 이동시키고 작동하면서 페이스 ID가 이들을 여러 번 인식했고, 많은 사람이 등장하니 자동으로 잠금모드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페더리기 부사장이 행사에서 페이스 ID를 작동하니 아이폰X는 '여러 사람이 무단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패스코드를 입력하시오'라고 한 겁니다.

참고로 패스코드는 아이폰을 재부팅하거나 페이스ID를 48시간 이내 사용하지 않아도, 패스코드를 6.5일동안 입력하지 않거나 지난 4시간 동안 페이스ID를 사용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잠금모드가 된다고 합니다. 내막을 알고보니 진짜 해프닝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헤프닝의 원인이 밝혀졌다고 다른 리스크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어요. 바로 인터페이스.

저는 갤럭시S8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금화면 해제는 패턴도 있지만 홍채인식을 주로 사용하는데, 가끔 귀찮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인식률의 문제가 아닙니다. 잠금화면을 풀어내기 위해 패턴방식으로 디스플레이를 구동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마다 마치 셀카 찍듯이 단말기를 바라보는 것은 의외로 번거럽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스마트폰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신체부위는 손가락이기 때문입니다.

애플도 이러한 심리적 진입장벽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페더리기 부사장은 "처음 터치 ID가 나왔을 때 장갑을 낀 상태에서 인식이 되지 않으니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페이스 ID에 익숙해 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애플의 의도대로 풀려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만 구체적인 인터페이스 변화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 페더리기 부사장의 진의는 잘 모르겠지만, 손가락과 시선이 동일한 조건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인지는 두고두고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아이폰X. 출처=애플

해킹? 이건 '그나마 나은 걱정'

일각에서는 페이스 ID가 해킹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비밀번호나 패턴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지만 생체인식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해킹이 벌어졌다면 후속범죄를 막기 위해 비밀번호와 패턴은 변경할 수 있지만 이용자의 얼굴을 바꿀 수 없잖아요?

이 걱정은 현실이 될 수 있으며 당연히 타당한 문제제기입니다. 그러나 페이스 ID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생체인식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안면인식 대신 홍채인식을 택한 갤럭시S8이나 갤럭시노트8도 비슷한 문제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걱정, 그러나 생체인식 기술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전제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