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농촌은 살기 힘든 곳이었다. 열악한 경제 수준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도시로 떠나 짧은 기간 동안 일용직에 종사하는 ‘농민공’(農民工)이 넘쳐났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농촌은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전자상거래 시스템에 힘입어 변신하고 있다. 또 중국 정부는 농업 선진국 이스라엘로부터 기술까지 수입하며 ‘농업계의 4차산업혁명’을 기획하고 있다.

▲ 태양광 시설로 운영되는 중국의 첨단 농장(출처=Amerisolar)

지난 11일 중국 정부는 이스라엘 정부와 3억 달러(3600억 원) 규모의 농업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과 신(新)농법을 적용한 협동농장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은 빅데이터와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농촌을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중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또 이스라엘 정부는 친환경 농법과 농촌에서의 에너지 사용과 관련된 기술 이전도 약속했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관련 비용의 40%가 에너지 비용인 것을 감안해 볼 때 중국 농촌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사건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현지에서는 ‘국내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지독한 환경오염 때문이다. 곡창지대 중 하나인 후난 성은 40%의 농토가 카드뮴 등 중금속에 오염돼 있다. 농업용수도 안심할 수 없다. 2015년 기준으로 중국 상수원의 30%가 수질 오염이 심각해 공장이나 농장 용수로도 쓰지 못하는 물이 상당수다. 중국산 쌀은 한때 전세계를 주름잡는 값싼 곡물이었지만, 지금은 ‘카드뮴 쌀’로 오인되는 신세다.

농촌의 잉여 노동력과 낮은 생활 수준은 주민들이 농촌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도시 거주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일용직에 종사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를 뜻하는 ‘농민공’(農民工)이 2015년 기준으로 1억 2천만 명이나 된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966위안(약 12만 6000원). 하루 9시간 가까이 일하며 일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못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농촌으로 돌아가길 꺼린다. 지독한 가난이 기다리고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농업부는 2015년 ‘농업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규획’(2015~2030)이라는 15년짜리 장기 계획을 내놨다. ‘농촌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시진핑 주석의 의지가 담긴 사업이다. 핵심 내용은 ‘농민들의 거주 환경 개선, 생태 농촌 역량 증대, 기술을 통한 생산 능력 강화’다. 중국 국내의 기술력으로 이룰 수 없는 환경 개선은 해외 자원을 들여 와 해결한다는 게 핵심 기조다. 중국 농업부는 ‘국제 기술 교류 협력 강화’를 ‘규획’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내걸었다.

중국 정부가 농업 혁신에 열을 올리면서 핵심 키워드로 내건 방침은 크게 두 가지다. ‘과학기술 우선주의’와 ‘선도 기업 육성’이다. 소농(小農)들과 기업형 농업 사이의 충돌이 심한 한국에서는 쉽게 떠올리기 힘든 일이다.

▲ 북경-슝안신구-텐진 간 거리를 표시한 지도 화면(출처=week in china)

중국 농업계가 또 다른 희망으로 걸고 있는 지역은 ‘슝안 신구’(雄安新区)다. 지난 4월 중국 국무원과 공산당이 전격 발표한 ‘미래 신도시’다. 허베이성 슝셴, 룽청, 안신 3개 현을 합쳐 지어지는 ‘4차 산업 혁명 신도시’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ICT 기업과 국유 기업, 금융 회사들을 대거 이주시키기로 했다. 베이징 인구 2200만 명 중 500만 명이 이 지역으로 이주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런데 슝안의 또 다른 기대주는 바로 ‘첨단 농업’이다. 다른 중국 북부 지역에 비해 깨끗한 습지가 많은 이 지역에 대규모 도시 농장이 지어질 전망이다. 인민대학의 리우 잉(Liu Ying) 박사는 “체험형 농업 관광이나 에코 에그리컬쳐 파크(Eco-agriculture park)와 같은 차세대 농업 프로그램이 대거 시도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대기업과 연구소, 대학 등을 이전 시켜 ‘농업계의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선행 기술 연구를 맡길 예정이다.

중국 농업부는 2014년부터 종자산업 발전과 농업 기계화, ‘농업 과학기술 혁신 플랫폼’ 기지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산시(陝西) 성 양링(楊陵) 구는 농업 첨단 기술 시범지구로 1999년부터 개발됐다. 대학-연구소의 실험실-과학기술 시범 농가-농민의 소통을 촉진하는 것이 ‘양링 농업 모델’의 특징이다.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 연구 결과를 농가로 넘겨주는 것 외에도 ‘기술 보급 교수’ 제도를 통해 시스템 농업 컨설팅 인력들을 현장에 둔다.

후베이(湖北) 성은 연매출 5억 위안(755억 원) 이상의 농업 분야 기업을 매년 100개 이상 길러내기로 했다. 10억 위안(15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30개씩 육성한다. 농업분야의 ‘강자’들을 길러내는 것이 소농들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은 한결 같다. ‘농업 분야에서도 선도 기업을 길러야만 성공 사례가 계속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칭화대 교육학과의 김한나 교수는 “중국정부는 농업 혁신 정책에 가속도를 올리면서 다양한 형태의 농업 실험이 가능한 신도시를 만들고 있다. 슝안 이외에도 상하이, 선전 주변에 도시 농업 인프라를 가진 지역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