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채무조정은 잠재적 파산자가 더이상의 채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채권자와 채무 협상을 하는 것을 말한다. 본인이 직접 나서거나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가 채무자를 대리해서 조정협상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이 일정의 사전채무조정 제도이며, 독일등은 일부 해외 국가들은  훨씬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회생법원가 주최한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주요국 파산법 관계자들이 자국 개인 채무조정 현황을 소개했다.

호주연방법원 브리짓 마코빅(Brigitte Markovic)판사, 네덜란드의 엘렌 펜데르스(Ellen Penderse) 중부네덜란드법원 판사, 미국 일리노이 북부의 마릴린 오. 마샬(Marilyn O. Marshall) 개인회생 상임 관재인이 토론자로 나섰다.

네덜란드는 채무자의 신청이 있으면 지방정부의 채무조정위원회가 승인 결정을 내린다. 펜데르스 판사는 “지방정부는 채무자의 채무조정신청이 있으면 4주안에 조정에 착수해야 하며 시급한 경우 3일 안에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네덜란드의 각 지자체엔 450건의 채무조정과 관련된 정책이 있다고 펜데르스 판사는 덧붙였다.

최근 네덜란드 지방정부는 채권자의 압류를 금지할 수 있도록 법원에 요청하는 정책도 마련했다. 팬데르스 판사는 “채무자가 생계비, 임대료, 전기세, 의료비 등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위원회가 법원에 요청 채무자의 소득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신청하는 정책을 세웠다”며 “최근에 신설된 제도라 성과 여부는 두고 보는 상황”라고 설명했다.

지방정부가 채무조정에 대해 채무변제 비용을 융자하는 경우도 있다. 팬데르스 판사는 “기본적으로 채무자는 최소생계비를 제외하고 채무를 상환하는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이조차도 가능하지 않은 채무자라면 지자체가 채권자와 채무를 조정하고 변제자금을 융자한 뒤, 채무자가 향후 3년 동안 융자받은 돈을 분할로 상환하는 제도가 있다”고 지방정부 정책을 소개했다. 팬데르스 판사는 이어 “채권자가 이러한 상환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지방정부는 채권자에게 동의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한다”고 말했다.

호주는 금융보증기구(AFSA, Australian Financial Security Authority)이라는 기관이 채무조정을 대리한다. 이 기관은 준정부기관이라는 것이 마코빅 판사의 설명이다.

마코빅 판사는 "일정 소득 이하의 채무자가 채권자와 협상할 능력이 없다면 금융보증기구가 나서 채무조정에 나선다. 채권자가 조정에 응할 의사가 있다면 금융보안당국이 채무를 조정하고 법원으로 갈 일을 만들지 않는다"고 나코빅 판사는 말했다.

미국 측 토론자로 나선 마릴린 오. 마샬 개인회생 상임 관재인(우리나라의 개인회생위원)은 "미국의 사전 채무조정은 민간기관이나 중재인(agency)이 사전에 채권자와 협상을 통해 신용카드 채무를 경감시키거나 채무를 감면하고 일시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채무조정을 한다"고 소개했다.

마샬 상임 관재인은 정부도 채무자를 위해 사전에 채권자와 협상을 한다고 언급했다. 마셜 상임관재인은 “정부가 채권자와 협상해 집을 잃지 않도록 하는 모기지 조정 프로그램(HARP, Home Affordable Refinance Program)과 재융자 프로그램(HAMP, Home Affordable Modificaton Program)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마샬 상임관재인은 법원 밖에서 이뤄지는 합의에 대해서는 "규제할 근거가 없어 무리한 조정이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국사회가 ‘법원 밖 조정’보다는 ‘법원 안 조정’을 선호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화상토론을 나선 존 마샬 로스쿨의 제이슨 킬본(Jason Killborn)교수는 “여러 연구과정을 통해 효율적인 채무조정이 무엇인가 고민했다”며 “채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중재자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킬본 교수는 프랑스 중앙은행과 네덜란드가 이러한 중재자들의 역할로 효과를 본 나라라고 연구결과를 설명했다.

▲ 서울회생법원 개원기념 국제컨퍼런스에서 호주, 네덜란드, 미국의 파산법 판사들이 개인 도산제도에 관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DB

미 신용상담사제도 정착 못 해, 개인파산 전환 쉬워

개인회생, 개인파산 신청전에 하는 채무자의 교육프로그램으로는 미국의 신용상담제도가 있다. 미국에서 34명의 직원을 관리하면서 연간 1만7000건의 사건을 처리해온 마샬 관재인은 미국의 신용상담제도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마샬은 “신용상담제도가 큰 실효성이 없는 것은 개인회생을 통과해 상환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신용관리교육이 필요한데도 교육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회생 신청때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 신청에 앞서 무조건 의무적으로 교육을 듣도록 해 반발심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