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이코노믹리뷰DB, 사진: 박재성 기자

웨어러블 시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여전히 포스트 스마트폰의 중요한 후보는 웨어러블의 스마트워치다. 이를 둘러싼 다양한 기술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손끝 하나로 스마트워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놈들연구소의 최현철 대표를 만나보자.

 

삼성에서 시작된 불꽃

이놈들연구소는 삼성전자 C랩의 1호 스핀오프 스타트업이다. C랩은 삼성전자 임직원 중 좋은 아이템을 가진 직원을 선정해 지원하고, 최종적으로 스타트업 분사를 유도하는 제도다. 최현철 대표는 “2014년 C랩에 선정되었고 1년 이상 과제를 수행한 후 2015년 9월 C랩 중 1호 스핀오프 스타트업이 됐다”며 “6명이 과제를 시작했으나 3명이 퇴사, 이놈들연구소를 꾸렸고 1명이 나갔지만 다른 후배를 영입해 현재 삼성전자 출신 직원은 3명”이라고 밝혔다. 현재 총 직원 수는 13명이다.

이놈들연구소는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하드웨어 제조 스타트업이며, 손끝으로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 시계줄인 시그널을 제작하고 있다. 일반 시계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손가락 끝을 귀에 대면 바로 음성이 전달되는 구조다. 음성신호가 제품에 장착된 체전도 유닛(Body Conduction Unit)을 통해 진동으로 1차 변환되고, 사용자가 손끝을 귀에 대면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가 귀속에서 다시 소리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사용자는 손끝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는 한편, 제품에 장착된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게 된다.

핵심 기술은 소리를 인체를 통해 전파될 수 있는 진동으로 바꾸어주는 BCU(Body Conduction)와 음성 데이터 전송 과정에서 일어나는 신호왜곡을 보정해주는 알고리즘이다. 이 기술은 현재 특허 등록 및 국제 PCT 출원이 완료된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시계줄로 사용되지만 스마트밴드로도 활용할 수 있고 전용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운동량 측정, 콜 리마인더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놈들연구소는 삼성의 투자를 받은 상태에서 중국의 창업장, DT캐피털로부터도 추가 투자를 받았다.

삼성전자에서 용감하게 스타트업 세상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최 대표는 “아이가 둘이고 가정이 있었기에 부담은 있었다”면서도 “오래 전부터 창업을 꿈꿨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창업전선에 뛰어들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다. 최 대표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도 제품의 제작과 유통, 마케팅 전반에 대한 감각을 익히려면 회사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회는 2011년 찾아왔다. 최 대표는 “당시 삼성전자 동료들과 회식자리를 가졌는데, 누군가 스마트워치를 들고 와 자랑스럽게 시연을 했다. 당시에는 스마트워치가 다소 생소했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면서 “그런데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스피커로 울리니 동료가 많이 부끄러워했다. 이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생각했고, 여기서 시그널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처음부터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초음파나 전기로 피부를 타고 음성이 전달되는 것을 생각했는데, 막상 사내 시연을 하니 혁신성은 있지만 상용화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팔을 따라 전기 신호가 흐르니 건강에 대한 우려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결국 피봇팅을 결심했고, 다행히 C랩을 통해 지금의 시그널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화가 개발된 후 인류에게 익숙한 사용자 경험, 즉 손을 들어 전화를 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최 대표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쓰는 사람을 옆에서 보면 마치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어색한 분위기를 느낀다”며 “시그널을 제작하며 손가락 끝으로 음성을 전달받는 사용자 경험을 유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아직 시그널은 정식 출시가 되지 않은 제품이다. 그러나 지난해 IFA 2016 기간 삼성전자 부스에 전시되어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올해 IFA 2017에서는 스타트업 전용 코너인 ‘IFA NEXT’에 공개되어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외국 크라우드펀딩인 인디고고와 킥스타터로 이미 24억원의 선매출도 잡혀 있는 상태. 제품은 올해 연말 출시될 예정이다. 최 대표는 “시그널 자체를 원하는 기업도 있지만, 손끝통화 기술 자체만 원하는 곳도 있다”며 “시장의 반응이 고무적이기 때문에 확실한 준비로 제대로 된 제품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사진: 박재성 기자

이놈들연구소, 플랫폼이 되겠다

시그널을 제작하는 이놈들연구소라는 사명은 이노베이션(Innovation)과 메들리(Medley), 즉 ‘혁신을 지속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들이 사명과 제품명을 동일하게 만들어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지만 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고. 그는 “사명과 제품명이 동일하면 마케팅 효과는 누리겠지만 제품이 잘못될 경우 회사도 위험해진다”며 “혁신을 지속하자는 뜻으로 이놈들연구소라는 네이밍을 생각했고, 회사를 일종의 창업 플랫폼으로 만들어 많은 아이디어가 구현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내 스타트업이 소프트웨어에 치우친 상태에서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 최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상당히 잘 구비되어 있다고 본다”면서도 “그래도 창업은 어려운 일이고,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생한 적도 많다는 후문이다. 최 대표는 “스타트업 업계가 서로의 정보를 쉽게 공유하지 않아서 좋은 파트너를 찾기 어려웠다”며 “하드웨어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제조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확실한 정보가 없어 시간과 인력을 낭비한 적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현재 이놈들연구소는 글로벌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정보공유 네트워크인 ‘하드웨어 클럽’에 가입해 있는 상태다.

이놈들연구소의 미래는 무엇일까. 최 대표는 ‘시그널 이후’를 보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지금은 시그널에 집중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며, 당분간 시그널의 강점을 보완하고 알리는 것에 주력할 생각”이라면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직원들이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즐거운 생태계를 상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그는 “청년들이 바로 창업을 준비하는 것을 보는데, 가능하면 회사에 들어가 실무 경험을 쌓고 창업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며 “기술만 좋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훌륭한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이놈들연구소도 여기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