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을 겪는 회사가 빚더미에 앉게 되자 법정관리(회생절차)를 신청하고, 그 과정을 버텨낼 자금을 찾아 나선다. 회생 가능성을 높게 보는 투자자(채권자)가 나설 요량이다. 투자자는 다른 빚보다 선순위로 갚아줄 것, 이자는 20~30% 수준의 고금리를 약속해줄 것을 조건을 내세운다.

이때 회생절차를 감독하는 파산 판사는 보증인은 아니지만, 우선 상환권과 높은 금리에 대해 확인해주기도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리스크는 회생절차 중에 경영이 악화돼 파산으로 치달을 경우다. 이때는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조차 다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원리인데, 투자자가 이 업종, 회사는 물론 이 회사 경영인의 경영 자세까지 제대로 알고 있을 때 해볼 수 있는 투자다.

올해 초 한진해운은 수년간 계속된 대규모 적자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회사가 보유한 선박들이 외국 하역장에 물건을 내려야 하는데 하역비와 운반비가 2200억원을 넘었다. 법원이 청산으로 가는 사태를 막고자 채권단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추가 손실이 두려워 자금 지원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단기 운전자금이 부족했지만, 설사 이를 투자했더라도 이미 기울어진 회사의 운명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진단이다회생절차에 들어간 한진해운에 추가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DIP 파이낸싱이라는 금융기법이 관심을 받았다.

DIP 파이낸싱(Debt In Possession Financing)은 법원의 회생절차 기업에 자금을 융통하는 금융기법을 말한다. 운영자금이든 채무변제자금이든 채무자 회사는 우선상환권을 보장하고, 혹시라도 파산으로 갈 위험성을 감안해 높은 금리를 약속한다.

이 금융기법은 미국에서 탄생했다. 지난 1978년부터 미국은 우리나라 기업 회생 절차에 해당하는 연방파산법 챕터11에서 DIP 파이낸싱 규정을 포함했다. 회생절차 중인 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 투입을 통해 회사가 다시 회생한다면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 또는 투자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GM, 크라이슬러, 유나이티드항공, 월드컴 등 미국의 주요 기업이 회생절차 중 이 같은 DIP 파이낸싱을 통해 수십억에서 수백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아 회생에 성공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금융기법이지만, 국내에서도 주요 기업에 대해 DIP 파이낸싱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9년 1월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했다. 이 기업은 회생절차 중 약 250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했다. 회사는 본사 공장과 기타 부동산 등에 대해 우선담보권을 제공하고 산업은행으로부터 같은 해 8월에 1300억원의 DIP 파이낸싱을 받았다. 이어 회사는 2010년에 회사 소유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각해 신차 출시 관련 비용 1000억원을 조달했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9년 12월 회생계획안이 통과된 후 2010년 11월 인도의 마힌드라그룹과 M&A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1년 1월 M&A를 거쳐 인수대금으로 우선담보 채권 등을 변제했다. 결국 2011년 3월에 회생절차를 졸업하며 정상기업으로 새 출발해 지금은 한 단계 높게 도약하고 있다.

동양건설산업

지난 2011년 7월 회생절차가 개시된 동양건설산업은 그해 11월경 SC제일은행으로부터 600억원의 운전자금을 DIP 파이낸싱 형태로 조달받는 데 성공했다. 당시 SC제일은행이 600억원을 지원하고 14% 수준의 이자수익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건설산업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과 화성시 동탄 지역에서 들어올 분양대금 채권과 받아야 할 공사대금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 제공했다.

대우로지스틱스

지난 2010년 10월 회생계획인가결정을 받은 대우로지스틱스. 한국정책금융공사 등 투자자들이 기업재무안정 사모투자전문회사(PEF)를 설립한 후 이 회사에 1200억원을 투자했는데, 그중 상환전환우선주식으로 600억원, 전환사채 형태로 나머지를 인수했다. 대우로지스틱스는 조달된 자금 중 600억원에 대해서는 종전 채권자 보유 회생담보권·회생채권 전액을 조기변제했다. 또 영업용 선박 구입에 각각 450억원을 활용하고, 나머지 150억원을 기타 회생담보권과 회생채권을 변제해냈다. 이를 통해 2011년 6월 회생절차가 종결됐다. 당시 사모펀드가 투자한  DIP자금이 종결을 위한 변제자금으로 사용돼 회사가 회생절차를 졸업한 최초의 사례였다.

새한비료

비료제조공장을 보유한 새한비료는 법원의 회생계획인가가 나온 직후 회생담보권자로부터 채권 전액 변제를 요구받게 됐다. 이 기업은 회생 인가 이후 비료공장을 담보로 대출받았고, 이를 기존 회생담보권자에게 변제한다는 조건으로 수정회생계획안을 만들었다. 이후 2014년 1월 수정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자마자 2014년 2월 비료공장을 담보로 무림캐피탈로부터 대출을 받아 회생담보권 채권을 전액 변제했다.

다우닝산업

다우닝산업은 지난 2009년 1월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같은 해 9월 회생계획인가결정을 받았다. 이 회사는 인가 후 회생계획안에 따라 전체 담보권 채무 중 기업은행에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변제해야 할 회생담보권 채무를 우선 상환했다.

나머지 회생담보권과 회생채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회사는 2013년 5월 보유 부동산을 활용, 종래 담보권자인 기업은행으로부터 대환형식으로 담보대출을 받았다. 이렇게 받은 대출금으로 아직 남아 있는 기존 담보권을 모두 변제하기로 합의하고 2013년 6월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종결결정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