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를 좋아하는 L 씨는 요즘 극장에 불만이 많다. 영화관에 개봉영화가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이다. 2주 전 개봉한 다양성영화를 보고 싶은데 주로 가는 극장에서는 상영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먼 극장에 들를 수밖에 없다. L 씨는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가 왜 이렇게 빨리 내려가는지 극장에 문의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일 년 동안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몇 편이나 될까? 단순 개봉 편수만을 놓고 보면 2004년 280편(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한국영화와 수입영화 합산 수치, 이하 동)에 그쳤던 것이 10년 만인 2014년 처음으로 1000편을 넘어섰다(1095편). 이 증가세는 더욱 빨라져 2015년엔 극장 개봉작이 1203편에 이르렀고, 2016년엔 1573편까지 늘어났다. 실제로 매주 극장에 나가 보면 신규 개봉영화가 보통 대여섯 편, 어떨 때는 10편을 넘어서기도 한다. 이 숫자는 단순 신규 개봉작만 따진 것이다. 재개봉까지 포함해 극장에 상영된 전체 편수로 확장해 보면 2016년 2578편에 달했다. 한마디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장이다.

스크린 편성은 이 엄청난 수의 영화를 놓고 관객들의 기호와 수요를 판단해 적절한 수준을 정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한정된 스크린에 이번 주 개봉할 영화는 물론 기존 상영작까지 수십 편의 영화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스크린 편성의 핵심은 시장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감지해 많은 관객이 좀 더 찾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적절히 분배하는 ‘예측과 조정의 조화’ 과정이라 압축할 수 있다.

우선 한 주의 편성 과정을 살펴보자. 극장에서는 이번 주 개봉할 몇 편의 작품을 놓고 과연 어느 정도 흥행이 가능할지 예측한다. 영화의 내용은 무엇인지, 감독과 캐스팅은 어떻게 되는지, 각 시즌에 따른 수요와 경쟁상황, 예매수량, 관객들의 사전 인지도 및 선호도, 시사회 후의 반응들을 종합해 작품별로 흥행 수준을 가늠한다. 안타깝게도 각 영화의 차이는 극명하다. 예컨대 할리우드 톱스타가 출연하는 화려한 액션의 블록버스터와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예술영화의 흥행 기대수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주 신규 개봉영화가 다가 아니다. 이미 지난주 또는 그 전 주 개봉한 영화, 심지어는 관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한 달도 더 된 영화가 넘어오기도 한다. 이들 기존 상영작은 지금까지의 실적 및 새로운 개봉작과의 경쟁상황을 고려해 스크린 조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부분 개봉 1주차보다는 2주차, 3주차로 넘어가면서 스크린 수가 줄어든다. 새로운 개봉영화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당연한 조정이다. 하지만 일부 영화는 관객들의 좋은 입소문에 힘입어 스크린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런 영화를 두고 업계에서는 ‘개싸라기 흥행’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기존 상영 영화와 새로운 개봉영화를 모두 모아 영화별 예상관객수를 산정하면 어느 정도 이번 주 편성 비율이 정해진다. 여기에 각 지역에 있는 극장별 특성을 고려한다. 학생층이 많이 찾는 대학가 극장과 가족 관람객이 많은 베드타운 극장은 편성 비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것까지 감안해 전체 편성안을 수립하면 이번 주 편성 가안이 나오고, 각 영화의 배급사와 협의 및 일부 조정을 거친 후 최종 편성안이 확정된다.

이처럼 정교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늘 변수는 존재한다. 첫 주 100만 관객 정도는 모을 것으로 예상됐던 영화가 의외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적은 스크린으로 시작했지만 예상외로 선전하는 영화도 있다. 그래서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매주 목요일, 또는 하루 앞선 수요일을 개봉일자로 잡는데 과거에 비해 첫 주말 성적이 무척 중요해졌다. 특히 좌석 배정에 비해 얼마만큼 관객이 찾았는지를 가늠하는 ‘좌석점유율’이 중요한 수치로 등장했다. 예를 들어 개봉 첫 주말 A영화의 좌석점유율이 25%, B영화의 좌석점유율이 40%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A영화에 비해 B영화의 관객 선호도가 훨씬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 주 스크린 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렇게 한 주가 지나면 개봉영화는 2주차 상영영화로 바뀌고, 또 이번 주 새로운 개봉영화가 쏟아진다. 극장은 또 다시 앞의 과정을 반복해 스크린을 새롭게 배정한다. ‘예측과 조정의 조화’ 과정을 또다시 반복해야 한다. 영화의 순환주기가 과거에 비해 빨라진 것도 이처럼 공급이 과도한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가 빨리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겠지만, 극장 입장에서는 그 수많은 영화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화를 순환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