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나리온(Denarius)은 로마의 은전(銀錢, 은화)이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나 군인의 하루 일당(日當)에 해당한다(그리스에서는 드라크마(Drachma)라고 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유대민족들은 당시 통용되던 이 돈으로 세금을 납부했다.

근로자들이 하루 일하고 그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일당 계약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당 근로계약은 약 3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존재했던 개념이었다. 심지어 앞선 예시로 들었던 인류의 경전(經傳) <성경>에도 일당 개념이 나온다.

일당의 역사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기록한 사료(史料)는 없지만, 역사학계에서 최소 기원전 13세기부터 일당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 람세스 2세는 누비아(지금의 북부 아프리카) 출신 기병(騎兵)들을 전쟁 용병으로 고용해 그들에게 일당으로 계산한 식량과 보수를 지급했다. 16세기 초 스위스 병사들은 로마 교황청 경비와 전쟁 용병으로 일하며 일당으로 계산된 급여를 받았다.

이렇게 지난 몇천년간 지속해온 일당 역사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바로 프리랜서(Freelancer)라는 표현이다. 프리랜서는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에서 일당을 받고 전쟁에 참여하거나 경비병으로 일했던 이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어떤 영주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Free) 창기병(槍騎兵, Lance)을 뜻한다. 지금의 프리랜서는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전속되지 않은 자유기고가나 배우 또는 자유계약에 의해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도 먼 옛날부터 일당의 개념이 있었다. 조선시대 농가의 ‘머슴(돈을 받고 집안의 농사나 잡무를 처리했던 이들)’은 음력 설을 기준으로 설날 이후부터 다음해 설날 전인 섣달 그믐날까지 1년 단위로 고용돼 ‘새경(쌀 80㎏ 한 가마 기준 7~8가마)’이라는 1년 급여를 받았다. 머슴들은 새경 외에 매일 밥과 술, 담배로 지급받는 일당을 받았다.

최근의 일당 지급 노동은 특히 경기 불황 시기에 각광받는 분야다. 불황을 맞은 기업들이 고정적으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줄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일본이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 불황을 겪은 일본에서 유행한 ‘프리터(フリーター)’라는 말은 일당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당은 경제 위기를 대처하는 생계수단을 넘어서 전문 역량이나 기술을 보유한 노동 인력들의 자유로운 노동 활동이자 ‘쏠쏠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그 유형도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건설 기술자에서부터 드라마나 광고 촬영 보조, 외국어 번역에서부터 학원 시간강사까지.

이제 일당 급여 근로는 (비공식적 영역에서) 우리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당의 세계. 그 광범위한 영역과 경제적 가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