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그 남자의 물건 - 그 남잔 무슨 물건을 사랑할까

그 남자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모든 자동차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철저히 편애하는 타입이다. 솔직히 슈퍼카 이하는 진정한 차로 보지 않는다. 나머진 그저 이동수단일 따름이다.

자동차가 오랜 관심사였다면 최근엔 게이밍 기어에 애정을 쏟는 중이다. 게임할 때 사용하는 장비 말이다. 특히 게이밍 마우스에 관심이 많다. 주로 하는 게임이 FPS(1인칭 슈팅게임)가 대부분인 까닭이다.

그 남잔 마우스도 차별한다. 성향 탓인지 웬만한 마우스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저렴한 가성비 제품보단 월등하고 우월한 녀석들만 밝힌다. 슈퍼카를 아끼는 마음이 마우스로 전이된 모양이다.

슈퍼 게이밍 마우스. 슈퍼카처럼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그가 진정한 마우스 끝판왕으로 여기는 물건이 있다. G900 카오스 스펙트럼. PC 주변기기 글로벌 최강인 로지텍 최상위급 게이밍 마우스다.

G900을 모르던 시절 그 남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자료 하날 발견했다. 유명 프로게이머가 어느 장비를 사용하는지 정리된 표였다. 장비가 제각각인데, 개중에도 자주 보이는 모델명이 있었다. G900이라든가 G900이라든가 G900.

▲ G900. 출처=로지텍

‘G900이 뭐길래.’ 그 남잔 프로게이머가 택한 그 마우스에 막연한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자 G900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눈에 반했다. 스펙은 물론 가격마저 슈퍼카 같았다. 이런 부분이 그 남잘 더 자극했다.

그 남잔 손에 쥔 싸구려 마우스를 흘겨봤다.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다시 모니터 속 G900을 바라봤다. 현실과 이상이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이다. 그 남잔 쇼핑몰에서 G900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빼길 반복했다.

결국 인터넷 창을 닫았다. 판타지는 실현되지 않았을 때 가장 달콤하단 걸 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작 게이밍 마우스에 20만원 돈을 써버릴 정도로 배짱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남잔 그날 이후로도 스크린 너머 G900을 바라만 봤다. 보고 또 봤다.

짝사랑은 의외로(?) 쉽게 식지 않았다. 슈퍼카처럼 슈퍼 게이밍 마우스를 동경했다. 이런저런 마우스를 더 알아보긴 했지만 눈에 차지 않았다. 이미 G900을 봐버린 눈이니까. 안 본 눈 살 수도 없고.

며칠 전 그 남잔 페이스북 삼매경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그 남자가 무엇에 관심 있으며 반응하는지를 몽땅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뉴스피드가 온통 자동차 아니면 키보드나 마우스 따위로 도배될 지경이었으니.

그러다 G900 사진이 보였다. 평소 ‘눈팅’만 하던 그가 웬 일인지. 댓글을 달았다. “G900! 갓!” 좋아요 버튼도 꾹 눌러 굳이 따봉이 아니라 하트를 눌렀다. 친애하는 G900을 향한 마음을 가득 담은 피드백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댓글에 답글이 달렸다. “이거 G900 아니에요. G903입니다.” 이름 모를 남자가 참견했다. 그 남잔 혼란에 빠졌다. ‘G903? 이런 모델도 있었나. 생긴 건 G900이랑 똑같은데.’ 일단 반신반의했다. 저 남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답글을 남긴 걸지도 모르니.

다시 검색창을 띄워 키워드를 입력했다. 이름 모를 남자 말이 맞았다. G903이란 물건이 불과 며칠 전에 출시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긴 건 G900이랑 거의 비슷했다. 가격까지도 엇비슷하다. ‘뭐가 다른 거지?’

의구심 반 호기심 반. 그 남자 가슴이 알게 모르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G903을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파악하기론 G903은 G900을 계승하면서도 보완한 마우스다. 또 하나의 슈퍼 게이밍 마우스가 탄생한 거다.

G903 핵심은 무선 기능 보강이다. 대개 게이머는 무선 제품을 신뢰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니까. 이런 식이다. 적과 1대 1로 승부를 벌이고 있는데 잠깐 연결이 끊겨 내 캐릭터가 죽어버린다든가. 긴박할 때 꼭 배터리가 방전되더라.

무선 마우스가 지닌 숙명일까. 적어도 G903 앞에선 통하지 않는 말이다. 무선 연결 안정화를 위한 첨단기술이 탑재된 마우스니까. ‘라이트 스피드’와 ‘주파수 변경 매커니즘(Frequency Agility Mechanism)이 그런 기술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G903은 라이트 스피드 기술 덕에 무선 신호 강도가 일반 제품 대비 최대 16배 높다. 또 주파수 변경 매커니즘을 통해 자동으로 주파수 간섭을 우회한다. 요약하자면 G903은 선이 없는 편리함은 취하면서도 유선 마우스가 주는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일석이조 제품이다.

‘G900 시대가 저물고 G903 시대가 왔구나.’ 그 남자 머리를 스친 문장이다. G903은 스펙이나 옵션이나 ‘동시대 최고 마우스’로 손색없다는 게 그 남자 생각이다. 그 남자의 G900 판타지가 G903으로 전이됐다는 걸 알아채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센서는 최상위급 PMW3366. 마우스 민감도는 1만2000DPI까지 설정 가능. 클릭 수명은 G900 대비 2.5배 향상된 5000만번. RGB 풀컬러 라이트 커스터마이징 가능. 양손잡이 그립에 유·무선 겸용. 11개 버튼 튜닝할 수 있음.”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그 남잔 G903 스펙을 혼자 읊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완벽해.” G900에 반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G903을 즉시 구매했다. 당당하게 일시불로. 이상이 현실로 내려앉은 순간이다. 상상 속 슈퍼 게이밍 마우스가 ‘인생 마우스’로 거듭나게 될진 모를 일이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 남자가 G903 실물을 영접했다. 대형 반지함 같은 패키지를 열어 G903을 쥐어보았다. 그러더니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흥분감과 허탈함이 뒤섞인 얼굴이다. 어쩌다 그 남자에게도 G903 시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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