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중국으로 출가한 딸네 집을

결혼시킨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지난주 다녀 왔습니다.

핑계야 딸이 웬만큼 요리하게 될 때쯤 방문하겠다고

선언했었지만 딸애가 사위와 늦게 합류를 하는 바람에

사는 집의 정리가 늦어져서 그랬지요.

그러면서도 사진으로 받아본 그애들 집 모습을 보면서,

실제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왕초보 주부인 딸이 무슨 음식이라도 해서

둘이 먹고사는지도 정말 궁금했습니다.

또 어느 외국 여행가 부부의 글에서 읽은 구절

‘사귄 지 6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두 사람이

긴 여행을 시작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크게 싸웠다’도

생각나, 잘살고 있는지 소감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많이 생각되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딸을 출가해놓고, 친정아버지로서 그 집을 처음 찾았을 때,

과연 ‘우리네 조상들은 그 딸과 사위에게 무슨 말을 남겼을까?’

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나는 이미 결혼식을 전후해

마음으로, 말로 다 전하고, 보여주었는데,

첫 방문이라 해서 너무 새삼스럽게 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했지요.

 

딸이 초등학교 시절, 학교 숙제로 가훈을 적어달라 했을 때

당황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 밤에 궁리하다가 세계적 첼리스트였던 파블로 카살스의 말을

가훈으로 적어주었던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잘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로 기억됩니다.

어린 딸에게 너무 어려웠던 주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딸네 집에 도착해 손잡고 기도부터 드렸습니다.

이어 ‘너희들끼리 오손도손 잘 살아라.

너희들끼리 오손 도손이 잘 된 후에 그걸 자녀, 부모 관계로

확대하는 행복 바이러스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다 큰 사위, 딸이지만 또한 쉽지 않은 주문이겠지요?

그럼에도 돌아오는 발길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오순도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들도 둘이 재미있게 살려는 마음이 같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애들 집 가까이에 그 애들을 자식처럼 그윽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내 좋은 친구 같은 선한 이웃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