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스타트업의 시대는 크게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육성정책으로 무수히 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했던 시기를 1기로 본다면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전선의 충돌이 벌어지던 시기를 2기, 옥석 가리기가 일정 정도 끝나고 업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한편 재차 시장 재편이 이뤄지던 시기를 3기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외부의 강력한 규제와 대기업의 공습으로 또 한 번 전쟁을 준비하는 4기다.

1기부터 3기의 치열한 흔적

2000년대 후반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스타트업 열풍은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ICT 대기업과의 연맹, 혹은 대립으로 구체화됐다. 네이버와 다음을 중심으로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이 ‘웹’의 시대를 열었던 상황에서 스타트업들이 조금씩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접근하던 시기다.

시장 부흥의 촉매제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다.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던 창조경제가 돌연 스타트업 지원으로 방향을 잡으며 막대한 정부 지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당장 2013년 9월 온라인 창조경제타운을 바탕으로 창조경제 플랫폼 구축이 시작된 이후, 2015년 7월까지 대기업과 지역 스타트업이 만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 17개 시도에 구축됐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 디캠프(D-Camp)를 비롯해 인터넷 기업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마루180 등 민간창업지원기관이 만들어졌으며 민간 밴처캐피털(VC)와 엑설러레이터와 협력해 기술창업보육을 천명한 팁스(TIPS)타운을 구축하기도 했다. 2015년 한 해에만 공식적으로 집계된 벤처펀드 자본만 2조6260억원이었다. 여기까지가 1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온디맨드 플랫폼 전략, 여기에 모바일 특유의 간편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트렌드가 스타트업의 핵심 가치로 부상하며 시대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2기의 시작이다. 수면 아래에서 횡행하던 스타트업 업계의 적폐, 즉 갑질 논란이나 과도한 기술 빼가기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 즈음이다. 온디맨드 O2O 플랫폼 기업에 막대한 유치가 이뤄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소셜커머스 업계는 쿠팡과 티몬, 위메프 등으로 확고하게 정리됐고 배달 앱과 부동산, 숙박 O2O 업체도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막대한 투자를 받아 지상파 방송 광고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등 일종의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3기는 스타트업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일정 정도 부상하고, 시장이 다시 재편된 시기다. 하지만 노이즈는 여전히 심각했다. 다방과 직방은 상표권 분쟁으로 날을 세웠고 여기어때와 야놀자는 ‘누가 1등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모델을 내세운 옐로모바일은 시너지의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배달 앱 시장도 여전히 이전투구 양상으로 흘렀다.

 

4기, 외부의 공세에 뭉치다

스타트업 업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점점 내부의 싸움보다 외부와의 싸움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크게 두 가지 맥락이다.

먼저 외부의 검증. 올해 초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나란히 성매매 논란과 해킹사건에 휘말렸다. 물론 야놀자의 경우 성매매 논란의 제기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으로 입증이 됐으나 기업 브랜드 가치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어때는 사이버 보안 강화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야 했다. 배달의민족은 별안간 골목상권 논란의 갑질 대상자로 부상했으며 다방과 직방도 다양한 규제에 발이 묶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흑자를 기록하며 비전을 보여줬으나 ‘내실 있는 성과는 아니다’는 비판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일정 정도 자리를 잡은 스타트업이 몸집을 불리고 안정화되며 외부의 검증이 심해졌다는 뜻이다. 대처법은 제각각이다. 여기어때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거나,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온오프믹스 대표와 부대표 성범죄 사건은, 작게 보면 스타트업 업계의 제한적인 이슈지만 크게 보면 업계 전체의 윤리적 가치를 따져볼 수 있는 중요한 이슈이기도 했다. 이제 스타트업은, 살아남은 스타트업은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시대로 몰렸다.

 

글로벌 기업의 공습이 이어지는 대목도 흥미롭다. 단적인 사례가 우버다. 우버는 최근 신선식품 배달 서비스인 우버이츠에 이어 카풀 서비스까지 공격적으로 준비하며 스타트업의 영역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방식은 다르지만 스타트업과 협력, 혹은 대립을 거듭하고 있으며 특히 카카오의 온디맨스 서비스는 유사한 스타트업의 자금줄을 말려버리는 파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펼쳐질 5기는 어떤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이 뭉쳐 시너지를 낸다는 옐로모바일의 방식을 따라갈 수 있고,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