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를 바탕으로 O2O를 매개로 사업을 벌이는 스타트업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망하는 기업과 살아남는 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긴 터널을 지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비전에 다다른 곳도 있다.

스타트업 전성시대는 이미 지났을까? 아니면 지금일까? 그렇지 않다면 아예 오지도 않았던 것일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스타트업의 매력이 대중의 관심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기본적인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내실을 따지면 전혀 다른 문제다. 스타트업이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역군이 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밝은 곳만 보지 말고 어두운 곳도 봐야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기형적으로 커졌는가. 혹은 부족한 점은 없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발전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스타트업 업계를 보자.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미래 고민을 거듭하자. 그곳에 답이 있다.

▲ 이놈들연구소의 시그널. 출처 = 이놈들연구소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의 경계도 모호하고 이를 규정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막 사업을 준비하고 시작한 기업을 의미한다. 딱 여기까지다.

모두가 스타트업을 외친다

박근혜 정부 당시 창조경제가 국정철학으로 부상하며 스타트업이 한국 경제의 등불로 부상했다. 하지만 회의론이 적잖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의 공포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상은 닷컴열풍에 빠졌다. 인터넷 관련 산업이 크게 부흥하며 소위 묻지 마 투자도 비일비재했다. 온라인 기술이 발전하며 너도나도 닷컴사업에 뛰어들었고 막대한 자금이 몰렸다. IT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였고 벤처기업은 주체하지 못할 돈을 쓸어담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IT기업들이 시도했던 인터넷 서비스들이 과도기적인 인터넷 기술에 너무 많은 것을 융합하려고 시도한 것이 비극의 전조였다. 시대를 앞서간 서비스들이 속속 현실의 장애와 만나며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닷컴열풍은 순식간에 닷컴버블로 증발하고 말았다. 수많은 벤처기업이 무너졌고 투자자들은 파산했다. ‘닷컴’이라는 신기술에 집중한 것은 좋았지만 이를 현실로 풀어가기에 아직 세상은 준비되지 않았던 셈이다. 여기에 기술은 없이 그럴싸한 마케팅 포장으로 투자자를 울리는 사람들과 소위 ‘사기꾼’들도 등장해 꺼져가는 닷컴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지금 글로벌 ICT 업계를 호령하던 아마존은 당시 파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경제의 국정철학이 스타트업 육성으로 방향을 틀고, 글로벌 경제가 침체되며 우수한 인력들이 대거 스타트업 업계로 유입되자 논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닷컴버블의 상처가 여전한 상태에서 스타트업 열풍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공포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닷컴버블이 남긴 상처 중 하나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닷컴버블은 없다’고 자신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스타트업 열풍이 불어오던 2015년 당시 “2010년을 기점으로 활발한 생태계 조성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에 힘입어 정부의 지원도 다각화로 추진되고 있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가 닷컴버블과 유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임 센터장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중국, 이스라엘처럼 소위 ‘잘나가는’ 지역과 단순하게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아도 평균적으로 보면 아주 활발하고, 또 건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수준이 높다. 적절한 판만 깔아주면 높은 성과를 거두는 훌륭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만 없으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9월, 그의 말을 반추하면 역시 ‘옳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스타트업은 닷컴버블과 분명 달랐다. 내실 있는 기술이 모바일 혁명을 타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기적인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고무적인 반응은 대기업의 절박한 외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를 호령하는 대기업 삼성전자는 지금 스타트업을 외치고 있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이 대표적이다. CE부문 윤부근 대표, IM부문 신종균 대표, 경영지원실 이상훈 사장을 비롯해 주요 사업부장, 임직원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연 삼성전자는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를 체화시켜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삼성전자 스타트업 컬처혁신 선포식. 출처 = 삼성전자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관리의 삼성’을 벗어나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소위 프랑크프루트 선언과 달리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혁신을 스타트업에서 찾은 것은, 대기업도 스타트업의 비전에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C랩도 마찬가지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2012년부터 도입한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며 지금까지 총 180개 과제를 수행했고, 75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가능하다면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스타트업 스핀오프를 시키는 것이 목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앱인 릴루미노, 이어폰이 없어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놈들연구소의 시그널 등이 모두 C랩의 작품이다. 이제 스타트업은 조직혁신과 비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주로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지만, 국내 스타트업의 존재감에 글로벌 ICT 기업도 속속 손을 내밀었다. 2014년 8월 설립된 구글 서울 캠퍼스가 좋은 사례다. 영국 런던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소한 구글 캠퍼스며 구글은 현재 창업 희망자에게 작업실 및 통신망, 카페 등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전문가 멘토링과 더불어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기업설명회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자유로운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 생태계 허브로 조성하고 있다.

물론 구글 서울 캠퍼스의 설립을 마냥 환영하기는 씁쓸한 여지도 남는다. IT 강국인 대한민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지원해 이들이 만든 앱을 안드로이드의 틀 안에서 활용하며, 이는 곧 구글 생태계의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이 국내의 매력적인 스타트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두운 그림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 창조경제의 위세는 가라앉았으나 스타트업 전성시대는 아직도 유효하다. 쿠팡과 배달의민족, 요기요와 배달통, 야놀자와 여기어때, 직방과 다방, 옐로모바일 등 굵직굵직한 스타트업은 여전히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활동하며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며 화려한 비전을 자랑했으나 그에 못지않은 그림자도 길고 짙었기 때문이다.

먼저 규제 문제. 이 문제는 주로 핀테크 스타트업 사이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범하고 핀테크 관련 규제가 여전히 많이 풀렸지만 아직도 전반적인 규제 일변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핀테크 스타트업 관계자는 “규제의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약간 과한 감이 있다”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이를 상용화하려고 해도 정부는 ‘해외 사례를 가져오라’고 면박을 준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인데 어디에서 해외 사례를 가져오라는 말인가.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스타트업 업계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스타트업 포럼 등이 출범하기는 했으나 아직은 역량을 모으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업계 내부의 문제도 있다. 낮은 연봉과 살인적인 업무강도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의 화려한 면만 보고 들어왔다가 금방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지만, 스타트업은 철저하게 업무 중심의 효율적 운영을 기본으로 한다. 성과가 없으면 끝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일부 지원자들은 슬리퍼 끌면서 대충 일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기본적인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심각하다. 최근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2개월 만에 퇴사한 A 씨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시키면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아가 화려함에 가려진 스타트업의 부정적 이슈도 여전하다. 최근 문제가 된 온오프믹스 대표와 부대표의 성범죄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스타트업도 우리가 사는 직장 세상과 동일하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매우 당연한 패러다임을 환기시켰다는 평가다.

지원금만 타가는 체리피커 문제와 그 외 적폐에 가까운 행태가 반복되는 것도 문제다. 스타트업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논란과 NDA(비밀유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대기업에 고스란히 사업 밑천을 빼앗기는 사례, 스타트업 입사를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거치는 스펙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이런 문제는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닷컴버블의 저주’가 여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를 보면 내실 없이 사업만 벌여 궁극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옥석 가리기라는 말로 포장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는 업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편이다. 닷컴버블의 아픈 추억이 여전한 상태에서 모바일 혁명과 함께 확실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으나, 꿈과 현실의 간극이 상당하다는 점으로 현재의 스타트업 업계를 정의할 수 있다. 아직도 스타트업 업계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