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망 중립성(통신망 제공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폐지론자와 옹호론자의 대결이 극에 이른 가운데, 이와 관련한 토론회가 국내에서 열렸다.  망 중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맞지만, 플랫폼 중립성은 다소 풀어줘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미국에서 망 중립성 폐지가 탄력을 받으면 한국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정부는 망 중립성 강화기조를 지속해서 추구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망 중립성을 둘러싸고 통신사와 ICT 기업의 충돌이 종종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업계를 중심으로 ‘우리도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플랫폼 중립성 논쟁에도 영향을 미치는 대목이다.

▲ 토론회 정경. 사진=이코노믹리뷰 DB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과 오픈넷이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리나라 망 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망 중립성 쟁점을 따져보고 그와 관련된 제로레이팅(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가 제휴해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하거나 할인해주는 일), 상호접속 등의 논란까지 토론하자는 취지로 열린 토론회다.

발제에 나선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는 망 중립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진입장벽에 높고 시장 지배력이 강한 망 사업자의 등장을 막는 한편, 망 중립성을 특수 공정거래규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망 중립성의 강화에 따라 플랫폼 중립성도 강화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내다봤다. 박 교수는 “망 중립성 강화는 혁신을 요구하는 일인데, 플랫폼 중립성은 혁신을 가로막는 일”이라면서 “독점의 차원에서 공정거래법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플랫폼 중립성은 인터넷 업계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호접속도 망 중립성처럼 강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부연했다.

가계통신비 인하 과정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제로레이팅은 망 중립성 논란과 일정정도 연결고리가 있으나, 독점적 지위에 대한 가치판단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망 사업자의 계열사 부당지원 문제나 부가사업자의 약탈 가능성은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망 중립성이 가계통신비 인하의 수단이 될 여지는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나 제로레이팅은 망 중립성 포함 문제가 아니라, 공정거래법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은 중요 쟁점으로 제로레이팅을 거론했다. 송 과장은 “제로레이팅에 대한 많은 찬반논쟁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는 제로레이팅을 일단 허용하고, 추후 모니터링을 통해 사후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영 방통신위원회 과장은 “고시를 통해 망 중립성과 플랫폼 중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용자 편익을 저해하는 행위를 맞는 개념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망 중립성 완화는 통신사의 자의적 차별 위험이 높고, 독점 시장 지배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도 망 중립성 완화는 인터넷 산업에 재앙수준의 타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정부의 관련 정책이 국내 ICT 기업에게 역차별이 되면 곤란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금노 한국소비자원 연구위원은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망 중립성 논쟁을 살펴야 하며, 제로레이팅과 같은 이슈도 이용자 중심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망 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만 플랫폼 중립성은 상대적으로 ‘강화보다 약화’로 가닥을 잡았다. 시장지배자적 위치의 사업자들이 사업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어 일종의 카르텔로 생태계에 군림하고 있는 것과, 다양한 플레이어가 존재하며 시장진입장벽이 낮은 플랫폼과 같은 규제를 받을 수 없다는 논리다. 바꿔 말하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는 망 중립성 강화로 규제해야 하며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ICT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평가받지만, 이런 논리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포함된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는 여전히 논란이다. 통신사들이 ICT 기업에 네트워크 서비스를 중단시켜 고사시키는 것처럼, ICT 기업들도 독점적 플랫폼을 활용해 스타트업을 압박하는 사례도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모바일 부동산 사업에 힘을 집중하며 스타트업 다방의 콘텐츠를 검색에서 배제했다는 의혹이 일어나는 부분과 녹색소비자연대가 네이버를 대상으로 플랫폼 공정성 위반을 이유로 방통위에 신고한 지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용자 가치에 집중해 산업의 발전과 다양성을 보장하려면 망 중립성 강화 수준은 아니더라도 나름 강력한 조치가 ICT 대기업, 네이버와 카카오 등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어렵다면 모든 ICT 플랫폼 서비스의 핵심이자 관문인 검색 서비스라도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일정수준의 규제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으며 박경신 교수도 “플랫폼 중립성을 절대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