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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의외로 쓸모있는 개념어 사전] ‘환대’가 불편할 때
김영수 칼럼니스트  |  stels.lee@econovill.com  |  승인 2017.09.14  18:08:04

환대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전에도 그랬지만 일 년 전보다 훨씬 더 저 말을 신뢰한다. 박사 학위를 핑계로 독일에 머문 지 일 년이 되었는데, 벌써 꽤 달라졌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지금의 필자를 아직 서울을 떠나지 않은 필자가 만나면 어떤 인상을 받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듯 예전으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면서 변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선 조금 난감한 면이 있다. 환경이 바뀌고 생각이 변하니 아무래도 글도 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터라 주체니 자유니 결론이 비교적 뻔한 식상한 주제를 많이 다루는데, 일 년 전만 해도 지극히 당연해 보이던 이치가 지금은 그렇지 않고, 결국 글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가 적잖이 있다.

‘환대’라는 개념이 그렇다. 서울에 살던 필자는 낯선 이방인이나 약자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수자들을 환대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지금도 틀린 생각이라 여기는 건 아니다. 다만 저 개념이 평평한 면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였다고는 생각한다. 남의 나라에 와서 환대를 기대해야 하는 이방인이 된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고학력 이성애자 남성이 보는 세상이 얼마나 편협한지도 새삼 깨달았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글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필자 같은 범인은 읽든 안 읽든 똑같을 지경인데, 언젠가 한 대학원 선배는 ‘자크(지퍼)를 다릴 필요는 없는 것처럼 자크 데리다의 글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농담을 했다. 한 무리의 시시한 대학원생들은 저 썰렁한 농담에 박장대소를 했는데, 누군가 눈치 없이 유명 사상가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데 우리는 왜 대학원에 온 것이냐는 말을 해 모두 곧바로 침울해졌다.

그래도 ‘환대’에 대한 자크 데리다의 정의는 오래도록 잊지 않고 있다. 그는 “환대란 타자에게 머물 장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엔 주인과 손님의 구도가 전제된다. 문전박대할 수도 있지만 주인은 손님에게 쉴 방을 내어 주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한다. 그렇다면 그는 ‘환대’라는 행위를 한 것이다. 말하자면 환대란 주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의무이자 손님은 할 수 없는 주인만의 특권이다.

지난 일 년간 다른 한국인의 집에 초대를 참 많이 받았다. 아마도 한국에서 3~4년간 받은 것보다 많았던 것 같다. 필자가 특별히 인기가 좋아서 그런 것이라면 행복했겠지만 다른 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식비를 아껴야 해서 그런 걸까?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숨겨진 무의식적 동기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특히 초대하길 즐기면서 반대로 초대받는 일에는 인색한 이들을 여럿 만나면서부터였다.

잦은 초대의 뒷면에는 오히려 이방인으로서의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이방인이자 손님으로 타국에 와 있는 이들에겐 누군가를 초대해 ‘주인’의 지위를 누리는 경험이 꽤나 소중하지 않을까? 실제로 겪어 보니 이민사회에서 초대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환대란 때로 의무보다 권리에 가깝다.

지난 일 년간 많은 독일인에게 따뜻한 환대를 받았는데, 반대로 필자가 그들에게 환대를 베풀 기회는 거의 없었다. 물론 낯선 외국 땅에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 환대들 덕분이었다. 만약 필자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 한국으로 온 낯선 외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머리가 아찔해진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한국인인 필자가 ‘낯선 이를 환대해야 한다’는 말을 여전히 강조해 적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데리다는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말도 했다. 손님이 누구인지 따지지 말고 환대하라는 것이다. 고상한 말이지만 얼마나 힘이 쎈 주인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님을 맞을 수 있을까. 약한 사람은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 지난 일 년간 환대라는 말엔 조금 더 예민해졌고, 자유라는 말에는 조금 더 뜨거워졌다. 선량한 주인의 따뜻한 환대보다 자유로운 시민의 동등한 연대가 훨씬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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