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언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 단장.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우버(UBER) 아시죠? 휴대폰과 택시만 있으면 운전사와 승객을 언제든지 연결해줄 수 있는 서비스 말이에요. 정년퇴직 후 우버 택시 같은 것을 개조해서 내 이름 딴 ‘이언 의원’이라고 붙이고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을 찾아가 진료하는 게 제 꿈이에요. 환자도 편하고 의사도 굳이 큰 돈 들여 목 좋은 곳에 개업할 필요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어린 시절 우연히 신경외과 의사를 다룬 드라마를 보고 덜컥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소년은 국내 최초로 암 진단 인공지능(AI)을 도입한 의사가 됐고, 정년을 앞둔 지금은 퇴직 후 택시를 개조한 의원을 끌고 다니며 환자를 찾아다니는 상상에 여념이 없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주변인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 뱅크’ 가천대 길병원 이언 교수의 얘기다. 지난달 17일 가천대길병원에서 이언 교수를 만나 그의 꿈과 국내 의료의 현실을 들어봤다.

2014년은 그에게 특별한 해였다. 이 해에 세계적인 암센터인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캐터링 암병원은 IBM의 인공지능 왓슨포온콜로지를 이용한 암 진료 결과를 미국 임상암학회에서 발표했다. 1985년 인천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과장을 맡고 30년 넘게 의료현장에서 근무한 노련한 의사인 그에게도 왓슨의 능력은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계적인 암 센터 수준의 진료를 국내에서도 받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왓슨을 도입하려 하자 주변의 거센 반대가 그를 가로막았다.

▲이언 단장.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언 교수는 “처음엔 모두 미친 아이디어라고 했다. 이세돌을 바둑에서 이긴 알파고가 나오기도 전이니까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이 지금만큼 형성되지 않았는데, 심지어 인공지능을 환자 진료에 이용하자고 하니까 어떻게 로보트한테 진료를 시킬 수 있냐며 의사들조차도 헛소리 취급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대하는 이들을 일일이 설득해 왓슨을 도입했다. 환자의 만족도는 수직 상승했다. 왓슨을 의료진의 일부로 참여시키고 의사들과 함께 논의하고 환자에게 진단 결과를 알려주자 진료현장에는 상상도 못한 큰 변화가 생겼다.

이 교수는 “기존 진료는 사실 의사의 일방통행에 지나지 않았다. 의사가 권위적으로 환자에게 ‘이렇게 하세요’라고 하면 환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면서 “왓슨을 도입하니 환자와 의사가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3분 진료’가 사라졌다. 왓슨의 도입은 관행을 혁신적으로 바꾼 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왓슨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교수는 왓슨이 궁극으로는 국민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 해 들어가는 국민의료비는 100조원이 넘는데 국민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20조원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최근 건강보험보장성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국민 진료비가 얼마만큼 천문학적으로 늘어날지 알 수 없게 됐다.

암은 국민 진료비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질병이다. 암 환자 대부분은 서울권의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길 원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가는 이유는 명의의 진료가 정확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은 소위 ‘빅 4(BIG4)’라는 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정도가 과하다. 전체 환자의 70%, 돈으로 따지면 90%가 이들 병원으로 흘러가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것이 큰 낭비”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나마 한 대학병원 명의의 진단을 믿고 치료를 받으면 문제가 없지만 환자들은 여러 유명 교수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탓에 많은 병원을 돌아다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병원마다 의견이 다르다면 환자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치료 시기도 놓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명의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환자들은 굳이 병원을 이곳저곳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치료는 잘하는 병원에 가서 받더라도 진료는 지역사회에서 받으면 된다. 이를 통해 국민 의료비를 자연스럽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병원에서 왓슨을 도입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가 은퇴 후 택시를 개조해 ‘움직이는 이언 의원’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의 진료회송 체계는 엉망”이라고 꼬집고 “의료현장은 정말 다양한 참여자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복잡한 생태계인데 모든 정부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이언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 단장.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환자는 계속해서 큰 병원만 찾지만 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의사가 수익을 내는 방법은 소위 ‘목 좋은 곳’에 개업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유동인구가 많은 목 좋은 곳은 임대료가 비싸고 높은 임대료를 회수하기 위해 의사들은 ‘공장식’으로 무리하게 병원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가 제안하는 의사도 행복하고 환자도 행복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언 교수는 “의사들이 개원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래야 저수가 상황에서 의사도 행복하고 환자의 접근성도 보장할 수 있다”면서 “특히 우버닥터처럼 목 좋은 데 개업할 필요 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하게 활용해 의원을 개업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우버 닥터가 되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