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심리학자인 펠리티타스 하이넨(Felicitas Heyne)은 2014년 우연히 <굶주림!(Hunger!)>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 다큐에서 인도의 사는 차야라는 두 살도 안 된 아이가 있었는데, 뼈와 가죽만 남아 죽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차야의 엄마는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려 해보았지만 아이가 거부한다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방송팀은 이들을 보건소에 데려갔고, 보건소에서는 차야에게 설탕물을 먹였더니 몇 시간 후 기운을 차린 차야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는 음식을 씹고 삼킬 기운조차 없어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탕물을 먹이는 간단한 행동이 죽음과 삶을 갈랐다. 차야의 엄마는 설탕이 있었지만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몰랐다. 배움의 기회가 없는 여성들은 글도 모르고 학교에 가지도 못한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갈지 누군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하이넨은 이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경제학자인 남편과 함께 글을 모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건강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비영리단체 유리두(URIDU)를 세우고 기본적인 생활정보를 알려주는 음성인식 MP3 플레이어인 ‘삶을 위한 MP3(MP3 for life)’를 만들었다. 이 MP3 플레이어에는 건강, 영양, 위생, 자녀양육, 가족설계, 노동, 안전과 관련된 400개 이상의 질문과 답변이 들어 있어 음성으로 질문하면 스피커를 통해 저장된 정보를 알려준다. 질문과 답은 의학 전문가들이 엄선했고, 1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다양한 언어로 번역했다. 쉽게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지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녹음했다. 태양전지로 충전되어 전기가 없는 지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유리두의 MP3플레이어는 지역 NGO 등의 기관을 통해 여성에게만 무료로 제공된다. 여성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축으로 저개발국가의 농촌 여성을 지원하는 것이 가난과 굶주림을 뿌리 뽑기 위한 열쇠라는 것이 유리두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저개발국가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이 보급된 지역을 위해 ‘유리두피디아(Uridupedia)’라는 이름의 웹서비스도 제공한다. 생존을 위한 정보가 저장된 유리두닷컴의 백과사전이라는 의미이다. 웹사이트는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지역에서 모바일로 접속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2G 네트워크에 최적화되었고 데이터를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심플하게 만들어졌다.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포르투갈어 버전이 2017년 7월에 새로 추가되어 아라비아어, 스와힐리어 등 총 9가지의 언어를 지원한다. 유리두는 글을 모르는 여성이 사는 곳, 사용하는 언어에 상관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번역 자원봉사를 받는 데 적극적이다. 번역 플랫폼을 이용하여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번역을 언제든지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고, 교정자가 있어서 틀릴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500자 이상 번역하면 참여 증명서도 발급해준다.

지금까지 MP3 플레이어가 보급된 곳은 모로코, 우간다, 탄자니아 세 곳이고 말라위, 아프가니스탄, 네팔에서는 보급을 계획하고 있다. 페이스북 프리 베이직스(FACEBOOK FREE BASICS)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50여개 지역에서는 URIDU.COM에 자유롭게 접속이 가능하다.

INSIGHT MP3라고 하면 대부분 음악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MP3로 음악만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MP3가 백과사전이 될 수도 있고, 지혜의 창구가 될 수도 있다. 유리두의 삶을 위한 MP3(MP3 for life)는 글이 아닌 소리로 삶의 지혜를 알려준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MP3 플레이어는 구식의 자리로 밀려났다. 하지만 더 이상 핫하지 않은 기술, 한물 간 기술이라도 새로운 맥락을 만나면 아주 매력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질문에 대답해 주는 생존 백과사전으로 다시 태어나 생명을 살리고 있는 유리두의 MP3플레이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