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문화를 살펴보면 ‘만주라는 지명은 본래 부족의 이름으로 만주(滿珠)라고 했었고, 지금은 만주(滿洲)라고 적는데, 주(洲)자의 뜻이 지명에 가깝기 때문에 가차하여 사용함으로써 서로 연관성이 있게 된 것’이라고 <흠정만주원류고>에 명시되어 있다. 또한 금나라의 역사를 기술한 <금사·세기>에 '금의 시조인 함보는 고려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금나라의 태조가 요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나서 발해인을 초유하면서 말하길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주족은 여진족이라는 자신들의 족명을 개명한 민족으로 그들 스스로 고려의 후손임을 자부한 민족이다. 결국 만주라는 이름은 고려의 후손인 만주족의 족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선조들 중 하나의 갈래인 만주족의 족명에서 유래되어 명명된 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마도(對馬島)의 지명은 3세기에 진수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마한(馬韓)을 마주 대(對)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그 설을 애써 부인하기 위해서 자신들은 쓰시마(つしま)라고 읽는 것이 대마(對馬)를 가장 합당하게 발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馬)는 일본어도 마로 발음하니 그렇다고 하지만 대(對)자를 일본어로는 다이(たい)혹은 쓰이(つい)라고는 읽어도 쓰시라고 읽지는 않는다. 일본어로 읽는다면 다이마 혹은 쓰이마가 되어야 한다. 더 황당한 것은 섬도(島)자가 원래 일본어로는 시마(しま)인 점을 감안해서 대마도(對馬島)라고 쓰고 일본어로 읽게 되면 다이마시마 혹은 쓰이마시마가 되니까 섬도(島)자를 생략하고 쓰시마라고 읽는 우를 범하면서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일본이 대마도를 쓰시마라고 읽는 이유는 역사 안에서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712년에 편찬된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에 보면 대마도를 진도(津島)로 표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진(津)이 일본어로는 쓰(つ)라고 읽고 도(島)는 일본어로 시마(しま)이니 대마도를 일본이 쓰시마라고 부르는 합당한 이유가 되는 것이며, 그 의미는 나루터 혹은 항구로 쓰이는 섬을 지칭하는 것이다.

대마도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에서 교역을 위해서 한반도로 오던 중에 머무르거나, 고기잡이 중에 풍랑을 만나면 피하던 항구였던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의 대마도는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라 자신들은 편의상 항구로 이용할 수 있던 섬이었던 것이다.

지적문화를 살펴보면 만주는 고조선이래로 대한민국의 선조들이 생활하던 터전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후예인 고려인임을 자부하던 여진족에 의해 청나라의 전신인 금나라가 건국되고 생활터전으로 삼았던 곳이다. 한족 중심의 중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토다. 역사 대대로 한족이 만주를 기반으로 생활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조선이 청나라와 국경협정을 했던 사실을 가지고 마치 중국과 조선의 국경이 변한 것으로 주장하는 설이 있지만, 이것은 청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지배했던 역사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전혀 의미가 없는 공연한 논쟁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만주국이 연합국에 의해서 해체되지 않고 지금 현재까지 존속했었다면 대한민국은 만주에서의 국경문제를 만주국과 논의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청나라와 중국의 관계는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꾼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중국은 명나라가 청나라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중화민국이 됐을 뿐이다. 중화민국 건국의 기조가 된 신해혁명이 멸만흥한(滅滿興漢) 혹은 멸청흥한(滅淸興漢)으로 만주족의 나라인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해혁명은 만주족의 청나라로부터 한족이 독립해서 나라를 세우겠다는 독립운동이었을 뿐이고,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중화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은 만주라는 지명을 명명하게 된 만주족의 만주는 중국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영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