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여기 40년의 시간을 넘어 자신의 위치에서 꾸준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중견기업이 있다. 파란만장한 경영사를 딛고 일어난 사람, 나아가 인연의 가치를 바탕으로 제작과 기획의 시너지까지 노리는 한편 광고기획과 제작, 인쇄출판사인 일진커뮤니케이션을 지휘하고 있는 신오식 회장을 만났다.

▲ 신오식 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파란만장(波瀾萬丈)

일진커뮤니케이션은 1979년 7월 설립된 일진문화가 뿌리다. 당시에는 인쇄와 출판업만 했으며 아내를 포함해 총 5명이 사업을 시작했을 정도로 미비했으나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글로벌 기업의 업무를 대행하며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뒀다. 신오식 회장은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해 큰 돈을 벌었다”며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감에 충만했던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

시련은 일찍 찾아왔다. 초기 성공에 도취되어 무리한 사업확장에 나섰기 때문. 신 회장은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자 서울 무교동에 5층짜리 빌딩을 통으로 임대하며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젊은 패기에 큰 돈을 들여 건물을 임대한 것은 좋았는데 건물주가 입주 1년 만에 나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임대차 보호법도 잘 몰랐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인테리어 비용 등 큰 돈을 날리고 사실상 파산했다고 한다. 당시 2500만원을 허공에 날렸고 신 회장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랐다.

신 회장은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재기해야 할까. 일반적인 월급생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이었기에 다시 사업에 도전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친구 사무실에 들어가 더부살이하며 전화기 한 대만 놓고 영업을 시작했다. 한때 건물주를 해치고 한강에 가 죽어버릴까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술 몇 병 먹고 죽느니 그 용기로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거리를 다니며, 혹은 예전 거래처에 일일이 연락한 후 기회가 보인다 싶으면 무작정 찾아가 만났고, 만나주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렇게 빚을 다 갚는 데 10년이나 걸렸다.

▲ 내부 시설장치. 출처=일진커뮤니케이션

40년, 강산이 4번 바뀔 시간

2001년 신 회장은 승부수를 던진다. 지금까지 개인법인으로 운영되던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인쇄 관련 단체인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대한인쇄정보기술협회, 대한인쇄문화협회 등에 가입하며 새로운 외연확장의 기회를 모색했다.

2007년 4월에는 종합광고대행사 키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방송광고와 신문사 매체 대행권을 등록하고 마케팅에서 기획, 광고크리에이티브, 미디어플랜, 인터랙티브광고, 디자인까지 광고의 시작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광고대행사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신 회장은 “보통 인쇄업을 하면 제작사를 중심으로 하는데 제작만 하다 보면 수익창출에 한계가 있다”며 “인쇄시설을 가진 사람은 기획력이 부족하고 대행사는 제작에 대한 외주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에 신 회장은 “일진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제작 위주의 회사와 기획력을 가진 키위커뮤니케이션이 서로 상호보완하는 관계로 시너지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제작과 기획을 총괄해 두 업무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강조했다.

그해 환경경영시스템과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받고 기업경영을 표준화했으며 2011년 11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중견기업이 산하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기도 했다.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연구와 개발에 미래의 비전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신 회장의 결단이다.

▲ 신오식 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성실과 신의가 중요하다”

대기업이 아닌 일반적인 중견기업의 업력이 대부분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지만, 일진커뮤니케이션은 이제 설립 40년을 바라보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제작과 기획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표면적인 강점을 넘어 뭔가 흥미로운 비결은 없을까?

신 회장은 “성실과 신의”라는 평범한 화두를 꺼냈다. 하지만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어려운 화두다. 그는 “골목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든 세계 최고의 기업을 운영하든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바로 여기에 모든 것의 성패가 갈린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빚으로 허덕이던 시절, 채무자가 찾아오면 도망치고 싶었지만 난 모두 만났다”며 “아무리 싫고 힘겨운 관계라고 해도 만나서 이야기하고 소통하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그때의 경험으로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버리고 있나”라고 반문하며 “학창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 대학에서 술 한 잔에 우정을 외치던 친구들과의 인연을 우리는 너무 쉽게 저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경영은 물론 인간사 모든 핵심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며, 그 속에 도(道)가 있다”고 말했다.

일진커뮤니케이션의 경영철학과도 연결된다. 신 회장은 “제일기획 등 국내외 유수의 전문인력이 나와 함께 일하고 있지만 어쩌면 전문성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의 인연, 혹은 관계”라며 “젊은 창업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관계, 또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신 회장의 개인적인 꿈을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정치도, 경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로 접어드는 것 같다”며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극한의 안개정국이지만 우리는 항상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힘들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이런 용기를 가지고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분야에서 40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자부심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