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전과 정유공장이 밀집한 미국 남동부의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가 허리케인 하비의 타격을 받아 원유생산과 석유제품 생산이 중단되면서 휘발유 가격이 치솟자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전략비축유를 10년간 절반 팔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미국 정부와 관련 업계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엄청난 경제손실을 초래한 하비는 전략비축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웠다.

미국 전략비축유 100만배럴 긴급 방출

3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하비로 미국 정유능력의 근 25%가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1일 하비의 맹위가 사그라들고 일부 정유공장이 가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에 미국 서부텍사산원유(WTI)는 이틀째 상승했다. 정유공장 가동 중단으로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생산이 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치솟던 휘발유 가격도 하락했다.

▲ 미국 지하 비축시설 개요.출처미국에너지부

 

WTI 10월 인도분은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1일 선물시장인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0.13%, 6센트 오른 47.29달러를 기록했다. 휘발유 10월 인도분은 0.4%하락한 갤런당 1.7729달러를 나타냈다. 휘발유 10월 인도분은 1.8%, 3.1센트 하락한 갤런당 1.748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휘발유 선물가격은 8월중 무려 25% 올랐다.

원유공급 차질에 따른 가격 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달 31일 전략비축유 100만배럴을 필립66의 루이지애나주 레이크 찰스 정유공장에 긴급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필립66은 공급이 재개되면 긴급 수혈받은 물량을 상환하기로 했다.미국 정부가 비축유를 정유회사에 공급한 것은 2012년 허리케인 아이삭이 멕시코만 원유생산의 95%를 중단하도로 한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하비는 전략비축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3개월 전인 지난 5월 원유 공급 과잉 시대에 비축유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며 당시 7억배럴 이상인 비축유의 절반을 10년 안에 팔아치우겠다고 공언했다.

▲ 미국의 원유비축량 추이.출처=EIA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비축유를 매각해 166억달러의 연방정부 적자를 줄인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미구 의회는 예산안에서 3억7500만배럴의 비축유를 매각하도록 승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회계연도 중 5억달러어치를 매각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7년 39억달러로 매각 물량이 정점에 달할 때까지 매각을 점차 늘린다는 구상이었다.

하비로 드러난 전략비축유의 진가

하비는 트럼프 정부의 방침이 단견 중의 단견임을 드러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자문관을 지낸 로버트 맥낼리는 블룸버그통신에 “긴급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은 비축유의 가치를 입증한다”면서 “비축유는 기상신호”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사의 케빈 북 전무이사는 블룸버그통신에 “비축유 비상 공급은 보험급 지급”이라면서 “보험유지 비용은 공급부족 시기에는 보험료에 비해 훨씬 낮다”고 강조했다.

▲ 미국 남부지역 전략비축유 저장기지 현황(2015년 12월 현재) 출처=미에너지부

미국 전략비축유 저장시설은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에 있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7월17일 현재 미국의 원유비축량은 6억7917만4000배럴로 나타났다. 평균 구입단가는 배럴당 29.70달러였다.

비축량 정점은 2009년 7억2700만배럴이었다.

비축유는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 4개 저장기지 지하 61개 시설에 비축돼 있다.  통상 텍사스주 휴스턴에 인접한 브라이언 마운드가 전체의 35%, 루이지애나주의 웨스트해크배리가 31%, 바이유초크토가 10%를 각각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비축유는 지하 610m에서 1220m 깊이의 소금동굴에 저장돼 있다. 소금 저장고의 지름은 평균 61m로 600만배럴에서 3500만배럴을 저장한다. 비상시 하루 최대 440만배럴을 뽑아낼 수 있다.

미국은 비축유를 석유쇼크 이후인 1977년 비축유 저장시살을 마련했다. 이들 소금동굴은 정유공장에 인접해 허리케인 등 폭풍우가 몰아친 며칠 내에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초대형 허리케인이 폭우를 퍼부어 수위가 높아질 경우 정유공장과 마찬 가지로 침수될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허리케인 하비는 최대 5인치(127mm) 이상의 폭우를 쏟아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는 물바다로 변했다.

미국 에너지주 산하 화석연료청의 크리스 스미스는 블룸버그에 “이들 비축시설은 역내 다른 에너지 인프라 모두와 동일한 도전과제를 갖고 있다”면서 “수위가 오를 대도 이들 사이트를 유지할 수 있는가, 특히 운영자금 제약이 따르는데도 이들 사이트를 가동하는 것은 도전이다”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앞으로 몇년 동안 20억달러를 들여 비축유 저장고 4개의 시설을 개량할 계획이지만 비용증가와 해안 여건변화에 따른 리스크 증가로 반대의견도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석유공사 지하비축시설 전경.출처=한국석유공사

 

한국, 근 2억배럴 9개 지하·지상기지에 비축

세계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은 비상시에 대비해 일정량의 원유를 비축해야 한다. 회원국들은 전년 순 수입물량의 최소 90일치를 비축해야 한다. IEA 회원국인 한국도 비축 의무를 진다. 정부가 대부분의 의무를 지고 업계는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원유와 석유제품(나프타 제외)을 합쳐 최소 45일치를 비축해야 한다. 완제품 수입업체와 LPG수입업체, 석유화학회사도 국내 판매량을 기준으로 최소 30일치를 비축해야 한다.

올해 5월 현재 비축량은 1억9700만배럴로 공공부문 비축량이 약 1억900만배럴, 산업계 비축량이 8800만배럴이다. 해외 비축량은 없다. 우리나라는 여수·거제·울산·곡성·평택·서산·용인·구리·동해 등 9곳의 비축기지에 비축하고 있다.

이는 IEA 통게가 나와 있는 4년 전인  2013년 비축량 1억7600만배럴에 비해 2100만배럴 증가했는데 공공부문 비축량 증가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한국석유공사 지상석유비축시설.출처=한국석유공사

2013년 기준 1억7600만배럴은 공공부문 9000만배럴,산업계가 8600만배럴이다. 이는 2012년 수입분의 238일치에 해당했다. 전체의 65%가 원유다. 공공부문 비축유의 86%는 원유고 산업계 비축유의 약 43%도 원유였다. 이런 비중은 올해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5월 기준 IEA비축유 통계가 맞다면 정부 목표치는 이미 초과달성된 것이 된다. 정부는 2025년까지 1억700만배럴을 비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매년 연간 목표량을 평균 가격에 구입하고 있다.지난해의 경우 2015년부터 이어진 저유가 기회를 살리기 위해 9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2016년 비축유 구입예산은 2015년 549억원에 비해 대폭 늘어난 것이다.정부는 올해 비축유 구입, 비축기지 건설과 비축기지 유지 보수를 위해 657억1300만원을 책정했다. 이중  비축유구입에는 104억9000만원을 투입한다. 비축기지 건설에  414억9200만원, 비축기지 유지보수에 138억1200만원이 각각 투입되는 만큼 한국의 비축능력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