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태진 법조전문기자.

문재인 정부 100일. 법조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법원, 검찰 등 사법 분야에서의 파격 인사는 새 정부의 사법개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검찰을 지휘, 감독하는 법무부장관에는 이례적으로 비실무가 출신의 박상기 로스쿨 교수가 임명되었고, 검찰 조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특검 출신의 윤석렬 검사가 임명되었다.

현 정권이 야당이던 시절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했던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되었고,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은 대법원장에 지명되었다. 과거 정부 시절에는 종종 화제가 되기도 했던 기수파괴 현상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법조계의 분위기 탓일까? 최근 몇 주간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판결들을 살펴보면, 법원의 태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항소심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불리한 선고결과는 아니라는 분석도 있지만 어쨌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는 중형에 해당하는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고, 삼성전자 다발성 경화증 근로자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간접사실만을 근거로 산재가 인정되었다.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되었던‘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서는 되려 징역 4년의 중형이 선고되었고, 서울중앙지법은‘신의칙’법리가 갖는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 드라이버가 최근 일련의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추단은 아직 섣부른 기우일지도 모른다.

 

우리 헌법은 법관에 대하여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수 있는 지위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 때의 양심이란 판사의 개인적 양심이 아닌 판사로서의 직업적 양심을 의미하기에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정권 교체나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 같은 요인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실상이야 어떠하든, 최근 법원이 하필 이 시점에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파격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하여 과연 법률소비자인 국민들도 그와 같이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2015년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사법제도 신뢰도는 27%에 불과하여 조사대상 42개국 중 39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기수문화 중심의 관료화된 법원·검찰 조직, 이른바‘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전관예우 관행 등이 이렇듯 뿌리 깊은 사법 불신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또는 정권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까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사법부의 신뢰회복은 더욱 요원한 길이 될 것이다.

만약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기존의 판례를 번복하거나 법원의 태도를 전향적으로 변경해야 할 사건이 있다 하더라도, 법원은 성급한 변화를 꾀하기 보다는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법적 안정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예측가능성 있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변화의 시점 역시 최소한 지금과 같은 정권교체기는 피해야 법원이 정치권에 줄서기를 한다는 오해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법원이 진정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법원은 언론이 관심을 갖고 인구에 회자되는 대형 사건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이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생활형’ 사건에 집중해 새로운 법리를 개발하고 이를 판결에 적용함으로써 사회적 배경이 없고 돈이 없어도 재판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머리에 쓴 관을 고쳐 쓰지 말라고 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모처럼 꺼내 든 사법개혁의 진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 사회의 사법 불신 해소라는 사법개혁의 궁극적 지향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법조계부터 외부적 영향을 받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