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B. 크로포드 지음, 윤영호 옮김, 사이 펴냄

 

손과 몸을 쓰는 노동의 가치,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공허한 삶에 미치는 치유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저자는 시카고대학 정치철학 박사이며, 동대학 사회사상위원회와 워싱턴의 싱크탱크 책임자로 일하는 등 전형적인 지식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노동의 정신적 영역에 깊숙이 침투한 자본의 공격으로 인해 자신이 넥타이를 맨 노예라는 것을, 즉 지식노동자의 아이러니를 뼈저리게 체감한다. 그리고 그간 누리고 있던 높은 연봉과 혜택, 사회적 지위에서 스스로 내려와 모터사이클 정비사가 되었다.

버지니아의 쇠락한 기찻길 근처 벽돌창고에 모터사이클 정비소를 열고, 그곳에서 직접 손과 몸을 쓰며 일한 결과 이전에 느꼈던 직업적 공황감에 대한 위안을 얻게 된다. 그는 ‘생각과 행동이 함께’ 요구되는 일이야말로 활기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육체적 몰입이 주는 치유와 위안의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21세기의 현대인이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해지고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정보화와 디지털화 덕분에 ‘만질 수 없는 시스템’에 갇혀 세상과 맞닿은 생생한 접촉과 앎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손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자유로워지고, 더 자유롭기 때문에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꼭지에 손을 댈 필요 없이 적외선 수도꼭지 밑에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보이지 않는 힘에게 물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고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키보드 위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인터넷, 스마트폰을 끄고 자신의 몸과 손을 써서 직접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생각은 훨씬 창의적으로 변하고 세상과 보다 더 풍부하고 지적인 교류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1950년대에 케이크믹스 가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업주들은 일부러 이 가루를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다.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케이크믹스 가루 소비자들, 즉 빵을 만드는 사람들은 케이크믹스에 자신이 직접 달걀을 넣는 등 스스로 행동으로 참여하고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케이크를 완성하고 난 뒤 더 뿌듯함을 느꼈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이처럼 우리는 ‘여전히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하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다.

손노동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구체적으로 표출하는 만족감을 느끼면 사람은 차분하고 느긋해진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자질구레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작업의 결과를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만든 물건, 자신이 고친 자동차, 자신이 가꾼 농작물 등을 가리키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인터넷만으로는 못을 박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노동자로서 ‘손쉽게 다운로드될 수 없는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정보화,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자신만의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부제는 ‘손과 몸을 쓰며 사는 삶이 주는 그 풍요로움에 대하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