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특검이 제기한 5개 혐의가 모두 받아들여진 결과다. 삼성과 특검이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혀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으나, 어떤 결론이 나오든 이는 대한민국 경제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대 전기가 될 전망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다가 별안간 냉각 상태에 돌입하기도 하고, 청와대에서 문서가 다발로 나오는가 싶더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증인으로 나왔다. 그 연장선에서 다양한 말들이 회자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의 말이 가장 인상 깊다. 그는 지난 8월 2일 재판에서 “저는 삼성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고 이 부회장에게 보고받고 지시하는 관계가 아닙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재용 부회장도 “식사나 회의를 할 때 제가 상석에 앉지 않습니다”고 증언해 방청석을 술렁이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일단 사실일 수 있다. 실제로 최지성 전 실장이 그룹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운영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특검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혐의는 모두 무력화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닐 경우 최지성 전 실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후 재판에서 최지성 전 실장은 “제가 오만했다”는 말로 ‘최지성 실세론’을 규정하기도 했다.

모르겠다. 고 소병해 삼성화재 고문과 이수빈 현 삼성생명 회장(유일하게 비 오너가 회장이다), 이학수 전 구조조정본부장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오너 주변의 역사’를 반추하고 이건희 회장 와병 후 등판한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준 짧고 강렬했던, 나름 성공적인 경영활동을 돌아보면 최지성 전 실장의 말에 큰 신뢰가 가지 않지만, 구중궁궐에 비견될 정도로 비밀이 많은 대기업 오너가의 상황을 어떻게 명확하게 알겠는가. 그저 취재하고 변죽만 울리면서 알아볼 뿐이다.

다만 여기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지성 전 실장의 주장에 따른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 여부와 최근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의 상황은 묘한 교집합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전 대장이 아닙니다”라는 말의 오묘함이다.

최근 IT업계를 뜨겁게 달군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의 총수 설정 여부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아리송했다. 처음에는 나름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까지 진격하고 있는 IT업계에 무리한 기존 국내 대기업의 선입견을 씌우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취재하면 할수록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았다. 공시 의무를 가진 임원들이 모두 직원이 되어 이해진 창업주의 우호세력이 될 가능성도 있었고, 미래에셋대우와의 자사주 교환도 애매했다. 또 실제로 이해진 창업주가 현재의 네이버를 사실상 진두지휘하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이해진 창업주가 블록딜로 지분 일부를 팔아도 가슴 한켠에 자리 잡은 씁쓸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네이버의 입장은 명확했다. 네이버는 투명한 경영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족벌경영도 없고 창업주의 지분이 5%가 되지 않는다는 것. 이는 당연히 이해진 의장의 주장이다. “전 대장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판단은 공정위의 몫이겠지만 이해진 창업주가 이끄는 네이버가 분명 투명한 경영에 나서는 것은 분명하다. 또 임원제 폐지가 이해진 창업주의 우호주를 숨기기 위한 술책이 아니고 미래에셋대우와의 자사주 교환도 순수한 양사 시너지라고 믿고 싶다. 여기까지 가면 대충 결론이 나온다. 굳이 이해진 창업주를 총수로 규정해 가뜩이나 비선실세 논란으로 ‘총수’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글로벌 경쟁자들을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역시 부족하다. 곰곰이 생각하니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뭘까. 매번 네이버의 독과점 전략에 투덜거리는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와 한담을 나누다 불현듯 떠올랐다. 사회에 보여줄 진짜 가치. 이해진 창업주는 분명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했으나 커진 덩치만큼 사회적 책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스몰 비즈니스도 자체 플랫폼 강화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고 골목상권 논란으로 상생펀드를 구축하는 것도 완전한 면피용이 될 수 없다. 만약 사기업 사상 처음으로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되고 싶었다면, 업계의 상생을 위한 순수하고 공격적인 청사진을 이해진 창업주가 직접 보여줬어야 했다.

물론 네이버가 공익단체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상생의 패러다임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최초’의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는 법이다. “전 대장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하며 대장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를 떼어내고 싶다면 이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린다는 무거운 책임의식을 느낀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사회에 직접 울리는 통섭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대장이 아닙니다”가 아니라 “내가 대장입니다”라고 말해도 박수를 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