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월 24일 ‘공짜 경제는 대가를 치른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공짜로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지만 결국 누군가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공짜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어디서 ‘공짜’에 해당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게 세상 이치다.

공짜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공짜란 없다. 지금 공짜 점심을 먹었다면 저녁에 혹은 다음날, 아니면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젊어서 놀았다면 늙어서 고생해야 한다. 베짱이의 우화는 이를 잘 설명한다.

개인이나 가정, 기업과 공동체 사회, 국가든 무엇이든 성장하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고통을 참아내는 인고, 시간의 투입, 아니면 돈의 지급 등 여러 가지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고 없이 인간이 성숙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일 뿐이다. 난관을 극복하지 않은 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벌어지는 혈투,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상품이 좋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굳건한 투지, 강인한 정신력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기존 상품에 흠뻑 취한 소비자들이 생소한 상품, 브랜드에 눈길을 돌리게 할 수는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삼성그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을 받아 설립 79년 만에 총수 장기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삼성이, 혼란의 터널을 불안한 심중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기에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부회장은 물론 삼성그룹도 재판 결과를 수긍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1심 판결은 판결이다. 사실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항소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룹 전체의 미래를 대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게 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주주총회에서 약속한 주주 가치 제고, 외국인 사외 이사 선임, 글로벌 기준에 맞는 비즈니스 관행 정착 등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의 난관을 궁극으로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개인의 결정에만 목을 매는 회사는 아니다. 출시하는 제품, 업종과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은 삼성은 한국의 재벌이 아니라, 한국 기업 중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유일한 초일류 기업임을 외치고 있지 않는가. 작금의 고통을 초래한 정경유착의 향수에 젖어 있을 기업도 아니지 않는가. 왜 망설이고 주저하는 듯이 보이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불안해 하면서 침묵한 채 항소 준비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칼을 갈아야 한다. 미래를 위한 칼을 갈아야 한다. 칼은 갈지 않으면 칼이 아니라 녹덩이가 될 뿐이다. 그것이 칼의 운명이며 삼성 구성원 전부가 불러야 할 칼의 노래이다. 새파란 빛의 검광은 칼을 갈지 않으면 발하지 못한다. 그것이 빛을 위한 대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님을 잘 안다. 억울함도 있을 수 있다. 등을 두들겨주는 우군이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승리는 불투명하며 그래서 외롭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후방의 숨죽인 모든 기업들이 삼성을 주목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외로운 길이지만 선봉에 선 기업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임을 잊어서도 안 된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 엄혹한 시절에 자신에게 채찍질한 백범의 말이 뼈에 사무치게 다가온다.

“돈을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위기에 봉착해 자칫 남 탓만 하기 쉬운 우리의 비겁함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날카로움이 묻어 있다. 감히 이렇게 묻고 싶다. 삼성은 소명을 발견했는가. 삼성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가. 삼성은 나를 이겨내고 있는가. 삼성은 새 생명 탄생을 위한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있는가. 삼성은 인고하고 있는가. 뉴삼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칼의 정신에 투철한가. “예”라는 우렁찬 답을 듣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