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 간 사람만 문제가 아니라 돈 빌려준 사람도 문제다." 상환능력 없는 채무자에게 빌려주는 것은 쉽게 ‘약탈적 대출’로 비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불어 민주당 제윤경 의원(비례대표, 원내 대변인)은  일찍이 "채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 전문가중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제 의원은 국회에 들어가기 전,  채무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한 시민사회의 활동가로 활약했었다.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하는 세태에 맞서 가계채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교육하고 부실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일이 그녀의 주 활동 내용이었다. 지난달 31일 소멸채권소각 행사가 국회의사당에서도 개최된 것도 제의원의 적극적인 의정활동 결과물이다.

"서민 가계부채문제, 금융이 아닌 복지로 풀어야"

제 의원은 기자가 질의할 새도 없이 `서민금융`이란 표현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서민과 금융이 서로 맞지 않는 조합"이라며 "서민 정책에 있어서 서민과 어울릴 수 있는 말은 복지"라고 강조했다. 서민금융이 아니라 `서민복지'라는 것.

제 의원은 "(서민들에게)복지와 양질의 일자리 정책을 펼치지 않고, 금융이 대출로 덮어줬던 것"이라며 "서민금융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시민운동가로서 박원순 캠프에 '서울시금융복지상담센터'의 모델을 제안한 이유도 이런 생각에서였다. 

▲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윤경 의원은 서민에 대해 금융정책보다 복지정책이 역할을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금융은 금융이에요. 여기에 포용적 금융이라는 말은 더 가당치 않은 거죠. 금융이라는 것이 자선사업가가 기금을 만들어 퍼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엄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금융에 포용은 없다고 봐야 해요"

제 의원은 이어 "본래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새 출발에 대한 동기와 성취감, 패배감 극복에 대한 사회적 격려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포용적 금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런 것들이 전제되지 않은채,  서민금융이라며 대출해주고 (채무자가) 못 갚는 상황에서 추심을 하면 서민을 두 번 죽이는 것"라고  성토했다.

때문에 서민금융진흥원이라는 공공기관이 그 역할을 다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민금융의 대출조건이 저신용자이면서 저소득자인데, 여기엔 연체기록까지 없어야 하죠. 그런 대상자가 얼마나 될까요. 예컨대 월 180만원을 받는 급여 소득자가 4인 가족을 부양하는데, 대출광고가 난무하고 소비를 조장하는 환경에서 카드도 만들지 않으면서...교육비로 50만원, 월세로 30만원, 외식은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매달 50만원씩 저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말이에요. 이런 사람들을 골라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니,  서민금융진흥원의 실적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실적이 없으니까 한시적으로 프로모션이라는 것을 해서 대출을 느슨하게 푸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그럼 서민들의 연체율이 다시 높아지게 되는 문제가 또 생겨요. 이 때문에 서민진흥원이 실적을 맞추기도 어렵고 대손도 목표치를 맞추기 어려울 거예요."

서민금융진흥원과 달리 채무조정기관인 국민행복기금과 신용회복위원회는 어느 정도 실적이 예상되지만, 근본적으로 대출과 채무조정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은 바람직 않다는 것이 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법으로 채무 조정하는 것보다 사전 채무조정이 더 필요"

가계부채로 고통받은 서민들의 고통을 더는 방법은 뭘까. 제 의원은 "그들의 채무조정은  법의 영역이 아닌, 사적 채무조정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이는 부실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롤링 주빌리운동(채무소각운동)` 당시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제 의원은 "파산제도는 채무자가 접근하기 너무 어렵고, 유일한 사적 채무조정인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은 채권회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실상 채무자에게 도움이 되는 채무조정 제도가 없다"고 비판했었다.

이날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제 의원은 "미국 도산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예전에는 미국이 파산에 더 많이 유연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태어나는 사람보다 파산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까요. 지금은 달라요. 미국도 파산제도가 엄격하고 잔인해졌지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채무조정에 있어서 미국보다는 유럽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무조정을 유럽식으로 해야 합니다. 연체되면 추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조정을 위해 채무자와 채권자간에 협상을 먼저 하도록 하고 있죠. 그래서 유럽에서는 파산자가 많지 않아요. 법적으로 채무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은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현행 독일은 파산신청에 앞서 공인된 소비자협회나 등록된 채무상담센터를 찾아 채무조정을 하도록 파산법에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도 파산에 앞서 과채무위원회라는 행정위원회에서 먼저 채무조정절차를 거치게 하고 있다. 

"카카오뱅크 위해 `은산분리원칙` 바꿀 수 없다"

기존 은행권의 모바일뱅킹에 비해 뛰어난 편의성 때문에 금융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카카오뱅크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제 의원은 "카카오에 금융을 허용한 것은 본래 핀테크 즉, 세계적으로 치열한 결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해 주려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이것과 상관없이 대출사업에 치중하는 것은 예대마진 사업을 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뿐만아니라 다음카카오만을 위해 `은산분리` 제한 규정을 바꿔달라는 것은 결국 대출의 예대마진 사업을 위해 법을 바꿔 달라는 것인데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카카오의 여수신 합계는 지난달 29일 기준 3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윤경 의원은 카카오뱅크의 영업방식과 내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제 의원은 나아가 "이런 상황에서 기존 은행들의 관망 태도가 더 의심스럽다"며 시중 은행을 겨냥했다. 그는 "정부가 (은산분리원칙을) 어떻게 하는지 시중은행들이 주시하고 있는데, 규제가 풀리게 되면 차별 운운하면서 자신들에게도 혜택을 요구하는 등 규제 완전 철폐를 요청할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제 의원은 이같은 예대마진 영업관행 문제와 별개로 청년들이 '대출이 금융'이라는 인식을 심어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카카오의 이런 대출영업이 과거 대부업체가 여성과 청년들을 타깃으로 무분별하게 대출영업을 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 카카오뱅크가 20대들이 빚으로 삶을 시작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 의원은 카카오의 인터넷뱅킹 사업이 과거 정부의 적폐와 관련 있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카카오에 혜택이 가는 방식으로 박근혜 정부가 인터넷뱅크를 허용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

"새정부, 새 출발이 가능한 나라되려면 더 과감히 부채탕감정책 펼쳐야"

제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채권소각운동을 펼친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그녀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주빌리 은행은 2012년 미국에서 일어난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에서 영향을 받았다. 미국 시민단체 '월가를 점령하라(Ocuppy Wall Street)'가 파산으로 면책되지 않는 의료나 교육비 채권을 사들여 무상소각한 이 운동에 영향을 받아, 제 의원이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이끌었다. 제 의원은 이 운동으로 미국사회가 전향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 제 의원은 정부가 좀 더 과감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의지를 다지고 있긴 한데 여전히 조심스러운 것 같습니다. 사회가 폭발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말이죠.  채무탕감에 대해서 국민이 오해한 것 중의 하나가 '버티면 되는 거냐‘는 건데요. 정부가 더 과감하게 그렇지 않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국민에게 이제부터 `새 정부는 새 출발이 가능한 나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라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부채탕감 정책을 피는 것이 '실패에 대해 관대한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제윤경 의원은 강조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제 의원은 일부 사람들이 재산을 숨기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정책이든 다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개는 정말 없어서 못 갚는 사람들에요. 재산을 숨기는 사람은 형사처벌을 하면 될 문제이지, 쓸모없는 채권을 소각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되지 못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사회가 너무 가혹하게 평가한다면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봐요"

제 의원은 "정부가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고 응원 해주는 나라가 되자' 라는 모토를 내걸고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부채탕감 정책을 펼 것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녀는 "아직도 채무자의 모럴해저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채권자들의 입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며 "취약계층의 부채탕감은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여야 하고 채무자 보호제도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라고 정책적 의견을 피력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