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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통 없는 보건당국, 분통 터지는 암환자
   
▲ 출처=이미지투데이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던 소통은 어디로 간 걸까. VIP가 직접 나서 건강보험보장성 대책을 발표하던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국민의료비 부담을 줄여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는 정책에 일부 암환자는 오히려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서 시위까지 불사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문제의 시작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의원에 내린 공문에서부터다. 면역항암제인 한국MSD의 키트루다와 BMS의 옵디보에 보험을 적용하면서 그간 오프라벨로 해당 약제를 처방해왔던 환자들은 8월 21일부터 다학제적 위원회가 있는 의료기관으로 옮겨 다학제적 위원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사전 승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보건당국의 이 같은 결정에 일부 말기암환자들은 8월 초부터 본인의 질환에 적응증이 없는 특정 항암제는 살기 위해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모든 약은 특정 질환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인 ‘적응증’을 갖는데 이 적응증을 넘어선 오프라벨 처방, 즉 적응증 외 처방이 보건당국의 결정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원래 폐암에 적응증을 갖고 있는 약을 위암 환자에게는 처방을 못 하는 셈이다.

심평원의 결정에 일리는 있다. 항암제는 약효가 탁월하고 강한 만큼 부작용도 크다. 약제가 적응증을 획득했다는 것은 이런 효과와 부작용까지를 모두 엄격하게 임상시험을 거쳐 확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 적응증을 넘어서면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알 수 없기에 조심스럽게 처방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 병원이어야 면역항암제를 맞더라도 비교적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보건당국의 이 같은 결정을 몰랐다. 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전부터 오프라벨로 면역항암제를 처방해주던 병의원에서 갑작스럽게 처방을 거부했다. 네이버 면역항암카페에는 병의원에서 갑자기 면역항암제를 처방해주지 않는 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불만 글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규모가 큰 대학병원을 찾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오프라벨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들에게 일부 대학병원 교수는 ‘효과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되돌려 보내기 일쑤였다고 한다.

면역항암카페를 운영하는 김태준 씨는 심평원의 결정으로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말기암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절망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는 보건당국이 ‘사전 승인절차’라는 제도를 마련해 승인받으면 면역항암제를 맞을 수 있도록 했지만 한시가 급한 암환자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문재인 정부가 메디컬푸어(경제적 어려움으로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를 걱정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돈 문제가 아니다. 항암제를 맞지 않으면 목숨을 잃기 때문에 갖고 있는 재산을 날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정부에서 세세하게 현황파악을 했다면 이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준 씨는 희귀암을 앓고 있는 8살 아이의 아버지다.

이해는 하지만 아쉽다. 만약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환자들에게 먼저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꼼꼼하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환자들로부터 받은 의견서는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았나.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난 후에야 급증하는 환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보건당국의 대처가 씁쓸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서로의 소통을 전제하지 않은 일은 무조건 삐걱거리게 마련이다. 보건당국은 지금이라도 말기암환자들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김윤선 기자  |  yskk@econovill.com  |  승인 2017.09.02  15: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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