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들이 해외 연수를 많이 가는 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해외를 다니며 예전처럼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고 한다. 왜냐 하면 하드웨어가 신기하다는 것을 빼놓고는 별로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료 출신 중 원로에 속하는 이헌목 우리농산물품목조직화지원그룹 대표는 이코노믹리뷰 인터뷰에서 “하드웨어를 보지 말고 유통 구조, 소비 시장 동향 등 소프트웨어를 봐야 진정한 세계적 농업 벤치마킹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기한 형태로 만들어진 스마트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동화된 정밀 농업 인프라 등을 살펴보는 게 답이 아니다. 최첨단 농업기술을 활용해서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생명인 것이다.

얼마 전 지인이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 왔다. 그는 휴가 기간을 쪼개서 미국의 최첨단 농업 시설들을 살펴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가 다녀온 곳은 바나나로 유명한 돌(Dole) 사의 농장이었다. 19세기 말 하와이에 정착해 아시아인과 원주민들을 노동자로 고용하기도 한, 그 돌 말이다.

돌 사의 창업자인 제임스 돌(James Dole)은 파인애플 농사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주 노동자들을 값싸게 고용해서 ‘하와이안 파인애플 컴퍼니’를 통해 파인애플 하나에만 집중해 전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파인애플로 성공을 거둔 다음에는 바나나 사업에 투자했다. 일조량이 많고 습도가 비교적 적은 하와이의 기후를 이용해 아열대 과일을 재배한 것이다. 그는 일년 내내 한국 초여름과 날씨가 비슷한 지역의 환경, 값싼 노동력, 미국의 도시화로 인한 소비습관의 변화 등을 적극 이용해 농산물 생산, 가공, 유통을 일원화하는 데 성공했다.

▲ 하와이에 위치한 '돌' 사의 대규모 파인애플 재배 농장(제공=강창근 태양광 전문가)

 제임스 돌이 한국처럼 지역별로 모든 품목이 다 존재하는 농업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 작황이 좋아 크게 돈을 벌 것 같았는데, 기후가 비슷한 다른 지역에서도 풍년이 들어 바나나 가격이 다운되는 위기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한국 농민들은 이런 종류의 실패를 거의 평생 겪는다. 그래서 농식품부가 지급하는 직불금이라는 형태의 보조금 없이는 최소 생계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지금 소속되어 있는 조합(구체적으로는 지역 농협)이상의 유통채널을 찾지도 못한다. 그래서 자기 농산물을 차별화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시장의 파도에만 휩쓸려 살아가야 하는 한계에 직면한다.

▲ 돌 사의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에 위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제공=강창근 태양광 전문가)

지금도 하와이는 파인애플, 바나나, 카카오 등 아열대 과일들이 ‘품목별 조직화’가 이뤄진 상태에서 활성화된 농업의 천국이다. 에너지 전문가인 지인은 태양광으로 전기를 30%씩 조달하는 돌사의 농장과 가공공장 규모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전세계에서 농업경영비의 40%는 에너지 비용이다. 그러나 돌사처럼 자체 발전원을 갖추면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게다가 돌사는 품목별 조직화에 힘입어 특화된 농산물 생산과 가공이 가능한 거대 조직이다. 사실 농식품부가 우리 농민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이런 시스템이다.

▲ 돌 사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의 항공촬영사진(제공=강창근 태양광 전문가)

해외의 최첨단 농업 인프라를 보고 막연히 부러워하고 우리 농촌에는 왜 이런 기반이 없을까 탄식할 때가 아니다. 조그마한 지역 안에서 오밀조밀 살아가며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농민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심어 주어야 농업의 살 길이 열린다. 이 땅에서 세계적인 농업이 어렵다고 성토만 할 게 아니라 진정한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