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급을 하는 J 씨는 다양성영화가 대중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보고, 작은 영화관 확산에 대한 제안을 시작했다. 요지는 작은 영화관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법적인 제약을 완화해 주길 요청한 것이다. 현재는 영화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적 규제를 많이 받는데, 작은 영화관에 대해서는 적어도 이런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도 다양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며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영화의 경쟁력을 높이고 상업영화 시장까지 성장시키는 자양분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영화의 글로벌화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소재와 차별화된 표현 기법들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상황을 돌아보면 그리 녹록하지 않다.

국내 전체 영화 산업의 역사는 매우 짧다. 영화가 산업적으로 성숙해 부흥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기간 자체가 20년에 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영화시장이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양성영화를 보고 즐기는 관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영화산업 내에서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프랑스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 일찍이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던 파테와 고몽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작 투자에 대한 여력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는 자국영화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졌다. 이는 미국영화의 지배력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 프로세스를 만들어 자국영화의 다양성을 살렸다. 반면 미국은 국가가 영화산업에 개입하지 않고 시장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도록 감시·감독하며 불공정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메이저와 인디영화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시장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건전한 상생의 생태계를 완성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사례가 우리에게 더 적합한지 정답은 없다. 굳이 해법을 찾는다면 이 두 나라 사례의 적절한 믹스가 필요해 보인다.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다양성영화가 충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 안에서 영화업계 각 구성원들도 각자의 역할도 정립해 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영화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제고하고 소비를 늘리기 위한 인프라 확보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다양성영화의 생산과 소비를 위한 시장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영화를 소화할 수 있는 예술영화관 확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전용관이 확대될 수 있도록 꾸준히 투자와 지원을 늘려가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영화관 운동의 합리성을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프랑스처럼 기존 영화관에도 일정 부분 지원을 통해 다양성영화 상영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다양성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일정 부분 예산을 꾸준히 확보해 수준 높은 다양성영화가 나올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프랑스에서 보듯 방송사의 영화 투자 의무화 같은 제도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와 별개로 영화감상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관객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점도 병행하면 좋을 것이다.

기업이나 제작자, 연출가 역시 다양성영화에 대한 다른 차원의 접근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관 기업은 아트하우스 등 예술영화전영관을 늘려나감과 동시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제작사나 투자사 관점에서도 독립영화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할리우드의 스페셜티 디비전의 모델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상업성과 예술성 면에서 모두 인정받는 다양성영화를 꾸준히 배출해야 한다. 연출가 역시 상업영화와는 다른 개성적 스토리나 연출 기법으로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관객들을 사로잡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할리우드도 초기 인디 작품들의 재기 발랄함, 신선한 감각 등에 주목함으로써 자본의 투입이 활성화되어 부흥기를 맞이한 점을 잊지 말자. 다만 기업이 손실을 입더라도 무조건 투자를 이어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장 논리와 배치될 수 있다. 그래서 앞서 밝힌 것처럼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웃고 즐기는 상업영화도 좋지만 의미 있는 다양성영화 한 편이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다양성영화에 대한 관객의 작은 관심이 우리나라 다양성영화 시장 성장의 가장 근원적인 힘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