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친환경 농업 지원 정책이 시작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환경 농업에는 많은 위험과 과제가 남아 있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일반 관행 농업보다 높은 원가, 특화된 유통 채널 확보의 어려움 등은 농가들이 친환경 농법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을 필연의 신념으로 따르며 농업계를 선도해 온 인물이 있다. 강용 학사농장 대표다.

그는 1992년부터 ‘유기농’을 외쳐 왔던 친환경 1세대 농민이다. 또 강 대표는 농식품법인연합회 회장을 지내며 농업인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지금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 위원장을 맡고도 있다.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은 친환경 농업인, 조합,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농민들이 스스로 소비 촉진, 판로 확대, 농자재 개발 등에 참여하는 시스템이다.

강용 대표는 최근 서울에 ‘김농부 밥쉐프’라는 ‘팜투테이블’(농장에서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레스토랑에 조달하는 모델) 식당을 오픈했다. 강 대표는 ‘농장, 공장, 식당’이 공존하는 농산물 생태계를 꿈꾼다. 28일 그를 만났다.

▲ 강용 학사농장 대표(촬영=천영준)

‘친환경 농업’ 선구자가 어떻게 식당에 도전하게 됐습니까.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2006년부터 시작해서 세 번은 광주에서 시도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친환경 농업으로 재배한 농산물은 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수지를 맞추기 쉽지 않았습니다. 또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한 한정식 풍토에서 핵심 반찬만 가지고 몇 가지 주변 반찬으로 차려 내는 식당이 소비자들에게 친숙하지 않았던 탓도 있겠죠. 그렇게 세 번을 해 봤는데, 좀 더 큰 도시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10년째 되는 지금 서울 위례신도시에 ‘김농부 밥쉐프’를 새로 열게 됐습니다. 지금은 과거보다는 좀 낫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죠. 좀 더 좋은 재료를 깨끗하게 조달하고, 플랫폼과 가맹점이 공정하게 이익을 배분하는 ‘선한 친환경 프랜차이즈’를 차려내고 싶다는 꿈입니다. 농장, 공장, 식당이 함께하는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하죠. ”

여러 모로 쉽지 않은 길 아닙니까. 친환경 농업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요.

“저는 처음부터 친환경 농업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꿈이 농부여서 전남대 농대에 갔습니다. 그리고 초기 자본 30만원으로 20평짜리 작은 규모의 밭을 일구는 게 제 일의 시작이었죠. 농자재(비료, 농약)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껴 보려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주위에 소문이 나면서 ‘친환경 농산물’을 유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 강용 학사농장 대표가 서울 위례신도시에 오픈한 '팜투테이블' 식당 '김농부 밥쉐프'(촬영=천영준)

농사를 차별화하기 위한 고민이 많았겠습니다.

“예쁜 채소들, 유럽에서 재배되는 특이 작물들을 재배해 보는 실험을 많이 했죠. 남들이 짓지 않는 틈새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에는 유럽으로 배낭 여행 가서 어떤 농사들을 짓는지 살피려고 했죠. 인증 체계도 없었던 90년대 초반에는 아픈 분 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먹었습니다. 1년에 200명씩 찾아왔고, 암 환자 분들이 여럿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분들이 농장에 올 때마다 아직 버텨 내고 계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발길이 뜸해 지면 세상을 떠나고 없는 거예요. 정말 저에게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좋은 식재료를 찾는 것일까? 더 좋은 방식으로 건강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계기는 없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게 됐죠. 그러면서 저의 일거리도 점점 많아 졌습니다.”

친환경 식당에 대한 고민도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던 것 같은데요.

“대학 다닐 때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간 당 600원을 벌었던 아르바이트였는데, 그때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시스템, 공급망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제 딸에게도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일 해보라고 적극 권유했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시스템을 몸에 익힌 이후부터는 소비자들에게 뭔가 선물을 제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유기농 분식점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죠. 중간에 좌절도 많았고, 고민도 있었지만,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한 끼 식사를 좀 더 건강하게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김농부 밥쉐프’로 개발한 레시피가 100가지 정도 있습니다. 표준 소스와 표준 재료가 각각 10가지 씩 있어서 조합해본 것이죠.우리가 1년에 먹는 화학물질이 약 20kg 된다고 합니다. 상당히 많은 양이죠. 사람들이 이만큼을 먹고 살아 가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환경 가치 사슬을 통해 소비자들이 좀 더 건강하게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가들에게도 조금씩 그 노하우가 전수되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 강용 학사농장 대표와 스마트팜 전문가 이인규 NIR 그룹 상무(촬영=천영준)

영세한 농가들 입장에서는 친환경 농업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소농, 대농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농업 자체가 너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가 농식품법인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회장단이 함께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은 1헥타르(3000평) 당 50만원 가량의 직불금을 주더군요. 당시 방문한 농가들이 평균 200 헥타르 정도니까 거의 1년에 1억 가까운 직불금을 받는 셈입니다. 그런데 독일 농민들은 여전히 힘들다고 말을 하더군요. 왜냐 하면 이런 저런 농업경영비를 제외 하면 겨우 먹고 살 정도로 돈이 남기 때문이죠. 좀 더 직불금을 올리거나 정부에 건의하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니 ‘독일은 철강 산업, 자동차 산업으로 돈을 벌어서 농업에 이렇게 돈을 써 주니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돌아오는 길에 회장단의 표정이 씁쓸했습니다. 선진국에서도 대농이든, 소농이든 할 것 없이 모두 힘들다는 사실 때문에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도나 환경 탓을 하기 전에 나부터 시작해보자고 마음 먹은 거죠.”

지금 친환경 농업이 위기를 맞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농가들도 자정을 해야 할텐데요.

“솔직히 말하면, 농가가 잘못했다고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DDT가 꿈의 살충제라고 했고, 정부가 사용을 권장하지 않았습니까. 반감기가 50년씩이나 되는데 그 사이에 농업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습니까. 몇 십 년 전 아버지가 뿌렸던 농약 때문에 내가 농장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한 축산 농장주들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자꾸 누구의 잘못을 탓할 게 아니라, 제대로 농민들에게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투명하게 식품 조달 체계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기농 친환경 농업과 농약을 쓰는 관행 농업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양 진영을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안됩니다. 저마다의 역량과 사정 때문에 사용하는 농법에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장기적으로 친환경 농업 비중이 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죠. 그러나 소농들이 사정 상 관행 농업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을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될 겁니다. 국가가 친환경 농업을 장려하기 시작한지 15~16년 되었고, 전문 급식 프로그램도 만들어 졌지만, 친환경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농가들의 마음을 절대 외면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친환경 농법으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외에 정부와 농가는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요.

“우선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때 제일 어려운 게 수익성입니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기 쉽게끔 농법과 농자재 개발 지원을 해야 합니다. 지금 농민들이 밭에서 실험하고 있는데, 얼마나 큰 무리가 따르겠습니까. 바이러스에 강한 농자재, 천적 등을 계속 연구하고 정부 당국이 제공해 줘야 할 겁니다. 지금은 민간 업체들이 개발한 농자재나 농약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죠. 그들은 때때로 수지 때문에 잘못된 성분을 섞기도 합니다.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겠죠. 그리고 제대로 된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한국인은 매우 급합니다. 자꾸 유럽의 식품 모니터링 체계만 이야기하지 말고, 한국 정서에 맞는 감시 체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은 친환경 직불금 선진화입니다. 농민들의 실험과 혁신을 유도하면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다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냉정하게 받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농민 스스로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농법을 변화시켜 나가려고 노력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