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차관은 총리에게 짜증을 낸다고 한다. 윗사람이 화가 나서 질책을 하는 것을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꾸중이라고 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질책하는 것을 윗사람은 짜증이 나서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말이지만 위·아랫사람이 서로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우리 전통 예법의 특징이다. 서로 기분이 나쁘지 않게 같은 말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참 세련된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복잡한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짜증은 불쾌한 마음의 상태로, 한 사람의 생각에서 오는 격양 또는 화(火) 등을 일컫는다. 이 감정은 좌절이나 노여움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면 부피가 증가한다. 그런데 주전자 같은 그릇에 넣고 밑에 불을 때면 옆으로 팽창하다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위로 치솟아 뚜껑이 열린다. 여기서 옆으로 팽창하는 것은 짜증이고 끓어 넘치는 것은 흔히 ‘화’라고 하며, 이런 압력을 받는 그릇은 인체의 장부 중에 간에 속한다. 또 간은 장군지관(將軍之官)이라 해 장군처럼 전선의 맨 앞에 서서 적을 무찌르듯 순간순간 화가 나거나 분노의 감정 혹은 오랜 시간 못마땅한 감정을 해결해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스트레스가 각기 장부마다 다르게 임팩트로 작용한다는 것이 현대 정신과학적 논리와 다른 점이다. 이는 모든 침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뇌와 관련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자극이 뇌에서 호르몬으로 반응해 신체의 장부에 걸쳐 작용하고 이것이 지나치면 장부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심장·비장·폐장·신장은 기(氣)가 위·아래로 올라타거나 아래로 하강한다. 그런데 유독 간장은 옆으로 팽창하게 되어 있는데 간에서는 옆에 있는 장기에 저항을 받으면 위·아래로 조절을 하게 되고 이것이 폭발하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 간에서 열을 받으면 간열이 상승하고, 간에 혈액이 많이 모이면서 지방간이 되기도 하고,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많이 보이며, 갑자기 욱하고 짜증을 잘 낸다. 이는 간의 기능이 작은 소양인에게 많이 보이는 간열 현상으로, 심하면 눈에 노랗게 황달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오랜 시간 누적되면 고지혈, 고혈압, 중풍으로 잘 나타난다.

 

특히 소양인 어린이에게 이런 현상이 많은데 조그만 자극에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화가 나서 한번 울음을 시작하면 분노에 북받쳐 끝까지 울다가 뇌에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 이르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아이가 모태에서 자라는 동안에 엄마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어나 축적되고 팽창된 분노조절 장애가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태교’라는 태내 교육으로 태안에서 안정적으로 가정을 다스리는 것을 중요시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소음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외부로 표출하는 표현력이 부족해 오히려 자신에게로 모든 화살을 돌려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자신에게 향한 분노가 너무 복잡하여 해소되지 못하면 짜증이 난다. 게다가 충격이 심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심지어 샛노랗게 변한다. 대부분 그 부하가 소화기계통으로 향해 억제된 위장 활동으로 인해 가스가 많아져 장폐색이 일어나거나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고 심하면 고도로 농축되어 위경련에까지 이른다.

태음인은 참을성이 많아 바로 반응하지 않고 꾹꾹 눌러 마음속에 쌓아 놓았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해소하기보다는 이미 집중해서 복수할 생각을 하고, 이를 계략으로 짜서 철저히 더 크게 되돌려 주겠다며 보복을 다짐한다. 특히 예의가 없는 사람을 보면 가장 짜증이 난다. 항상 정중하고 매너 있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무례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화가 나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감정을 무조건 억제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쌓인 감정이 폭발해 신체화장애를 일으키기 전에 적당한 정도로 표출하는 것을 중용(中庸)이라고도 한다. 슬프면 슬픔을 적절히 표현하고,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감정을 어떻게든 세련되게 조금이라도 해소해야 정신 건강상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