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네이버 영화/쇼박스

이름난 소설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원작의 유명세로 인한 부담감이다. 원작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점은 영화를 알리는 측면에서 분명히 유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야 ‘본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기준에서 평가를 받아야하는 것은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달랐다. 원작의 기본 흐름은 가지고 왔지만, 그것을 단순히 그대로 ‘얹힌’ 것이 아닌 영화라는 표현법에 맞는 새로운 설정들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구현해낸다. 

‘시류를 따르지 않는’ 냉철한 비판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김영하 작가가 “소설에 없었던 설정들이 영화에 추가되면서 몰입감을 증폭시켰다”면서 영화에 대해 호평했다고 하니 영화의 작품성은 적어도 원작의 유명세에 ‘묻힐’ 정도가 아니니 믿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시나리오가 이끄는 묵직한 힘과 배우들의 연기력은 최고의 시너지를 냈다. 설경구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늘 그래왔듯 이번 작품에서도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한번이라도 알츠하이머에 걸려 본 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에 따뜻함과 차가움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 김남길의 연기도 설경구의 포스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 출처=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쇼박스

이 영화의 또 한 가지 감상 포인트는 아이돌 그룹 A.O.A 출신 신예 배우 김설현의 연기다.  화려한 비주얼(외모)과 인기를 등에 업은 몇몇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부족한 연기력으로 관객과 평단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것과 달리 김설현의 연기는 작품에 무리 없이 스며든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녀가 맡았던 배역이 혼자의 감정으로 극을 이끌어나갈 정도의 비중은 아니었지만 <강남 1970>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연기임을 감안할 때, 주연 배우들의 ‘포스’를 감안할 때 앞으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이미 검증된 시나리오를 영화 문법으로 새롭게 해석한 스토리텔링의 탄탄한 힘,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만나 굉장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원작을 읽은 관객들에게는 텍스트와 영상이 표현하는 각자만의 특징을 비교하는 재미를, 원작은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스토리텔링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면 이 영화를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반전’이다. 거듭되는 반전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본다면 더욱 작품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을 믿지 마라”는 극중 설경구의 대사. 이것이 힌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