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일상가젯 - 그 물건에 얽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

첫 장비를 살 때 설레던 마음이 겨울잠이라도 자는 건지. 게이밍 기어에 입문하고 이것저것 사용하다보니 불감증에라도 걸린 듯하다. 게임 불감증도 모자라 게이밍 기어 불감증이라니. 너무 하는 거 아님?

처음엔 작은 차이도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감흥이 없다. 기계식 키보드? 청축 스위치가 내는 타닥타닥 소리가 처음엔 경쾌하게 들렸는데 이젠 거슬린다. 괜히 게임 사운드 듣는 걸 방해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무엇보다도 비싸지 않나. 왜 꼭 매력 있는 기계식 키보드는 10만원이 넘는 건지. 기껏 그런 물건 사놓고는 아까워 짜증날 때 샷건(키보드를 힘껏 내리치는 행위. PC방 사장님들 억장 무너지게 하는 행동이다) 날릴 수도 없지 않나.

뭔가 다른 게이밍 기어는 없을까. 불감증을 치유해줄 새로운 물건 말이다. 그러다 발견한 게이밍 키보드 하나가 있다. 쿠거(COUGAR)의 반타(VANTAR) RGB란 제품이다. 기계식도, 멤브레인도 아닌 팬터그래프 타입 키보드다. 유니크하다.

▲ 사진=노연주 기자

 

유니크 팬터그래프 게이밍 키보드

쿠거 제품은 처음이다. 2007년 태어난 독일 브랜드다. 커세어가 범선 문양으로 유명하다면 쿠거는 이름대로 퓨마 얼굴로 기억된다. 참고로 북미 사람들은 퓨마를 쿠거라고 부른다. 쿠거의 몇몇 제품은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반타는 독특하게도 팬터그래프 게이밍 키보드다. 게이밍 기어 불감증에 걸린 나도 호기심이 다 생기더라. 반타를 받아 다짜고짜 언박싱에 임했다. 첫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납작하게 눌린 호떡 같은 키보드랄까. 키 하나하나가 납작하다. 노트북 키보드를 떠올리면 어떤 느낌인지 알 거다.

컴퓨터에 연결하지도 않고 자판부터 두르려본다. 팬터그래프 타입이라 스위치를 깊게 누르지 않아도 된다. 가뿐한 타건으로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반타는 고요하다. 기계식 키보드는 물론 멤브레인 키보드보다도 정숙함을 지킨다.

같이 게임할 때 처음엔 영 어색하더라. ‘팬터그래프 키보드는 원래 이런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몇 분 지나니까 손에 익더라. 몇 시간 반타로 게임하다가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니 역으로 그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 사진=노연주 기자

 

무지개에 갇혀 게임하기

사실 대단히 특별한 생김새는 아니다. 납작한 스위치가 특이하다만 ‘심플’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나 게이밍 기어예요!”라고 외치는 것 같은 디자인을 선호하는 유저라면 반타의 모습이 심심하게 보일 수도. 적어도 컴퓨터에 연결하기 전까지는.

반타는 두 얼굴의 키보드다. 소리만 들으면 정숙한 녀석인데 LED 라이트를 켜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상 화려한 모습이다. 제품 테두리가 무지개 조명으로 뒤덮인다. 키마다 불이 들어오는 건 물론이고. 게이밍 기어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렇게 팬터그래프 게이밍 키보드라는 독특한 정체성이 완성된다.

▲ 사진=노연주 기자

불빛 밝기가 조금 어두운 감은 있다. 특히 형광등 아래에서는. PC방 같이 어둑한 환경에서 사용하면 부족함이 없다. 1680만색 RGB 컬러로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하다. 조명효과도 다양해 취향에 맞는 걸 고를 수 있다.

별도 프로그램 없이 조명 효과나 밝기를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다. FN키와 숫자키만 누르면 다양한 조명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다. FN키를 활용해 음악이나 영상을 재생·정지한다든가 볼륨 조절도 할 수 있다. 필요할 땐 계산기를 띄우는 것도 가능하고.

 

'몰래 게이밍' 용병

반타는 게이밍 특화 기능을 지원한다. 19키에 안티 고스팅 기술을 적용한 게 대표적이다. 게임할 때 동시 입력 빈도가 잦은 키에 오인식 방지 기술을 넣었단 얘기다. 다른 게이밍 키보드처럼 윈도우키 잠금 기능도 제공한다. 한참 게임하다가 윈도우키 누르는 상상을 해보자. 몹시 아찔하고 짜증난다. 그러니 잠그면 속 편하다.

W, A, S, D 키와 방향키를 전환할 수도 있다. 역시 게이밍 키보드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게이머는 복잡한 설정 없이 2가지 중 익숙한 쪽으로 전환해 플레이할 수 있다. 제품 무게는 600g으로, 일반 기계식 키보드 절반이다. PC방에 내 키보드를 챙겨다니기에도 적합하단 얘기다.

▲ 사진=노연주 기자

가격 경쟁력도 충분하다.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3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기계식 키보드는 괜찮다 싶은 제품이면 10만원을 넘기 일쑤 아닌지. 3만원대 제품도 있긴 하지만 한 번 비싼 제품을 보고나면 눈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팬터그래프 키보드처럼 아예 다른 영역이면 몰라도.

정리하자면 반타는 과묵하면서도 놀 땐 놀 줄 아는 친구 같다. 인강(인터넷 강의) 듣는 척 하다가 엄마 몰래 게임하기에도 적합할 듯하다. 소리도 조용한 게, 딱이다. 무지개 조명에 취해 게임하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만 간단한 키 조작으로 불빛을 꺼버리면 그만이다. 내 입장에선 밤에 고요하게 글 쓰다가 잠들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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