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

:고대 그리스극에서 자주 사용하던 극작술(劇作術)의 한 종류. 기계 장치의 신이라는 뜻

 

심형래가 감독한 영화 <디 워>는 2007년에 관객을 가장 많은 모은 영화다. 하지만 840만명이라는 숫자보다 완성도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영화에 관한 갑론을박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스타 평론가 진중권은 애국심 마케팅으로 흥행한 것일 뿐 서사는 엉성하기 짝이 없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저 생소한 용어도 덩달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Deus ex machina’는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등장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20대의 어느 날, 한 어르신이 필자에게 “열두 가지 재주를 가진 놈이 밥은 빌어먹기 마련”이라는 악담 같은 덕담을 해준 일이 있다. 필자야 아무 대꾸도 못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콧방귀를 뀌었겠다 싶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으니 인맥 덕에 성공한 금수저인가 싶지만, 그는 철학뿐 아니라 천문학, 생물학, 수사학, 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기념비적인 저작을 수도 없이 남겼다. <시학>도 그중 하나다.

<시학>은 서양 최초의 문예비평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문학의 본질과 구성요소, 좋은 문학의 요건 등을 다룬다. 이천년도 전에 쓴 책이 오늘에도 의미를 지닐까? 한 가지 예만 들자. 본래 ‘정화’ 혹은 ‘배설’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tharsis’에 ‘예술 작품을 통한 감정의 정화 및 해소’라는 의미를 덧붙인 게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예술 작품을 관람하며 ‘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군’이라고 말한 첫 번째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면 무엇보다 서사의 개연성과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인물의 성격, 표현의 아름다움, 주제의 숭고함도 중요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허술하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 (…)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디세우스가 파르나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을 가장한 사건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해 <오디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시학> 중)

생각해보면 우리의 상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느닷없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거나 어이없이 단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등 개연성 없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두고 우리도 ‘막장 드라마’라며 비난하기 때문이다. 한 작품을 걸작으로 만드는 것도, 막장으로 만드는 것도 최종적으로는 개연성, 즉 사건과 사건 사이의 필연성에 있다. 무엇보다 말이 돼야 하는 것이다.

“성격에 있어서도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적인 것 혹은 개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할 때 그것은 그의 성격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하며,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는 후자는 전자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따라서 사건의 해결도 플롯 자체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메데이아>나 <일리아스>에서 그리스군의 출범이 저지당했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 장치에 의존해서는 안 됨이 명백하다.”(<시학> 중)

저 기계 장치가 바로 기계 장치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거중기와 비슷한 형태의 기계 장치가 자주 등장했다. 기계를 이용해 인물을 공중에 띄우고 마치 신처럼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게 했던 것이다. “기계 장치에 의존해서는 안 됨이 명백하다!” 이건 꼭 연극 얘기만은 아니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등 말이 안 되는 약속에 번번이 속은 우리는 안다. ‘이것만 되면 인생 끝’을 보장하는 인생의 끝판왕 같은 건 없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대본에 등장하면 이야기가 유치해지고, 삶의 태도로 이어지면 인생이 억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