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을 꿈꿨다. 통기타 하나 메고 다니는 게 멋이던 시절이다. LP판 닦아가며 들국화부터 김광석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연주하다가 밴드까지 결성했다. 무대에 올라 공연도 했다. 사람들이 열광할 때의 희열이란.

게임 개발자를 꿈꿨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일이다. 가족과 인천의 한 유원지에 놀러갔다. 거기 작은 흑백 TV 하나와 조이스틱이 있었다. 그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화면엔 이리저리 튀는 공과 그걸 받아내는 직사각형 바가 보였다. 처음 보는 이 광경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넋 놓고 2시간 가까이 바라만 봤다.

같은 사람이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는 전자계산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프로그래머가 됐다. 꿈을 절반만 이룬 건 아니다. 40대인 지금은 음악 연주 게임을 만든 게임개발사 대표이니까. ‘사실상’ 두 꿈을 다 이룬 것 아닌지. 임종관 라이머스(구 아이즈소프트) 대표 이야기다.

▲ 사진=노연주 기자

 

프로그래머와 뮤지션 잇는 지휘자

“유저분들 피드백 엄청 보고 있어요. 보면 우리가 전달해주고 싶은 감성을 사람들이 받은 것 같아 행복합니다.” 라이머스 사무실에서 만난 임종관 대표가 그랬다. 신작을 출시한 지 열흘이 채 안 된 시점이다. 라이머스는 8월 10일 모바일 음악 연주 게임 ‘더뮤지션’(스마일게이트 서비스)을 내놨다. 2013년 출시해 앱마켓 1위에 올랐던 ‘행복한 피아니스트’의 차기작이다. 초고속으로 누적 다운로드 100만건을 돌파했다. 흥행 예감이다.

두 게임의 핵심은 다르지 않다. 리듬에 맞춰 악기를 연주해 음악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임종관 대표는 사실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간단한 게임이라며 이걸 고도화하자는 생각으로 더뮤지션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다 만드는 데 2년이나 걸렸다. 모바일 게임치곤 긴 시간이다. 느린 덴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연구개발(R&D)에 공들였다. 악기 소리를 온전히 구현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예를 들어 피아노는 건반을 세게 혹은 약하게 또는 짧게 누르면 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가. 서스틴을 밟아 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임종관 대표는 악기가 내는 소리를 모두 따서 온전히 게임에 반영하려 했다. 개발자는 이해를 못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죠?”

“하루는 새벽에 개발자가 ‘우와!’ 소리치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어요. 이 방법으로 소리를 넣어 실행해보니 사운드가 달라 스스로 깜짝 놀란 거죠. 그날부턴 이 친구가 더 집어넣을 게 있으면 달라고 먼저 그러더군요. 더뮤지션은 그들이 하나씩 들어보며 스스로 감동해가면서 개발한 게임인 거죠.” 임종관 대표 말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그는 전문 음악가를 영입하기도 했다. 실용음악 전공자는 물론 경력 10년이 넘는 싱어송라이터까지 라이머스 가족이다. 10명 정도의 음악가가 악기별로 파트를 나눠 소리를 뽑아낸다. 그걸 가공해 개발자들이 게임 안에 그 소리가 나게 해준다. 음악과 개발 양쪽을 이해하는 임종관 대표는 두 파트를 조율하는 지휘자 역할이고.

더뮤지션이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자 그와 라이머스 사람들은 피드백을 받아가며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임종관 대표는 이 과정에 모든 팀이 참여하길 원했다. 우리가 뭘 만들고 있는 건지 이해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이런 식이다.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무작정 플레이를 부탁하고 소감을 물었다. 살아 있는 피드백이다. 어제는 기획팀, 오늘은 아트팀, 내일은 개발팀. 이런 식으로 돌아가며 밖엘 나갔다. “팀원들이 직접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남들한테 보여주고, 피드백을 듣고, 종합해서 개발 방향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만드는 게 제가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땐 뮤지션 지인들의 멘토급인 사람들 평가도 받아봤다. “한 분은 들어보더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소리가 들어 있다며 놀라더라고요. 기타만 봐도 낼 수 있는 400억가지 소리를 따냈으니. 그분이 ‘대단한 도전을 했다’며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했어요.” 그가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더뮤지션을 해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메뉴가 있다. 버스커 모드 말이다. 실제 버스커의 음악이 등장하는 콘텐츠다. 유저는 그 음악에 맞춰 연주하며 마음에 드는 버스커를 응원할 수도 있다. 버스커와 유저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인 셈이다. 라이머스는 8월 19일 잼투고라는 문화공간에서 버스커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능력 있는 버스커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공간으로 더뮤지션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 출처=스마일게이트

 

“콘텐츠는 짜낼수록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라이머스는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 분야는 정답이 없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저도 몰라요. 누가 알려주겠어요. 이런 조건에서 제 역할은 팀원들이 지닌 잠재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 아닐지.” 임종관 대표는 ‘직접 참여’를 중시하는 리더다. 그가 말한 ‘환경’ 역시 이와 연결된다.

“라이머스의 개발문화는 직접 참여를 중시합니다. 콘텐츠 하나를 만들 때 매번 유닛을 구성해요. 유닛엔 사운드 담당자가 필요 없다고 해도 함께 구성되는 식이죠. 무얼 만드는지 서로 소통하고 알아야 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우린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참여를 중시하되 압박은 줄인다. 시간 투자에 결과가 정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은 짜내면 짜낼수록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화두는 ‘비전’과 ‘미래’였다. 그는 간혹 이런 소릴 듣는다. “그건 레퍼런스에 도움 안 돼. RPG(역할수행 게임)나 하나 만들고 말지.” 이런 말에 꿈쩍 않는 그다. 이른바 ‘양산형 게임’이 아닌 라이머스만의 독창적인 색깔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모토가 있으니. “앞으로 만들 게임은 퓨전 장르에, 독창성을 살려 재미까지 연결하는 참신하고 새로운 걸 목표로 합니다.”

▲ 사진=노연주 기자

그에게 언젠간 꼭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냐고 묻자 뜻밖에도 더뮤지션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말장난이 아니다. 더뮤지션의 가상현실(VR) 버전을 개발하고 싶단 뜻이다. VR로 유저가 현실감 넘치는 무대에 올라 관중 환호를 받아가며 연주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더뮤지션이다. “무대에 오르는 게 짜릿하다는 건 서본 사람밖에 몰라요. 이걸 체감할 수 있는 VR 더뮤지션을 언젠간 만들고 싶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더뮤지션이 올해 안에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교감하는 뮤직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이끌 계획이다. 해외 진출도 준비 중이다. “해외에서 더뮤지션을 서비스해줄 파트너를 찾고 있어요. 현지 음악을 잘 알고 있는 회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꿈을 꾸고 있는 그다. 전처럼 꿈이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종관 대표라면 어떤 모습으로든 꿈을 실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