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유적 공간, 130×72.7㎝ oil on canvas, 2014

 

이석주 작가는 책 자체에 주목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자세히 관찰하면, 책도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닐 뿐만 아니라 약간 과장한다면 인생의 경륜이 묻어나는 것 같다. 겉장의 찢긴 자국과 보풀이 인 흔적, 마모되고 닳은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헌책이니까 먼지가 묻고 해진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시간의 도전을 이기지 못하고 덧없이 사라져가는, 어쩌면 도도한 세월의 물결에 떠내려가는 인간의 운명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 사유적 공간, 162×130.3㎝ oil on canvas, 2014

 

최근 이석주(ARTIST LEE SUK JU, 李石柱)작가의 관심은 ‘대상을 통한 자기인식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하면 책에 자신의 심리나 감정을 실어 우회적으로 자아의 존재감을 실어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데 비해 이석주의 경우는 그 반대다.

대상은 주관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인식하고 대상에 주의를 보냄으로써 역으로 그 시선 속에 자연스럽게 자아의 정서나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서정의 기조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었으나, 젖은 목소리와 같은 우수와 함께 소란스럽고 분주하던 세상이 잠시 멈춘 듯 한 느낌을 갖는 것은 혼자만의 착각일까.

△글=서성록(미술평론가, 안동대 교수)

 

▲ 차 한 잔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석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