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유적 공간, 116.8×91㎝ oil on canvas, 2011

 

빼어난 사실력을 자랑하는 작가는 많아도 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히는 작가는 흔치 않다.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할 수는 있어도 거기에 사유나 정서까지 보탠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이 힘든 작업을 수십 년째 해오는 작가가 바로 서양화가 이석주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그만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묘사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극사실 작품을 선보였다.

 

▲ 사유적 공간, 91×72.7㎝ oil on canvas, 2011

 

이석주 작가의 1980년대 작품이 타인과 두절된 현대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 작품은 말과 꽃, 들판과 하늘 등 여러 이미지의 데페이즈망을 통한 낯선 이미지끼리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그가 이번에 선보인 ‘책’의 이미지는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소재가 아니다. 책은 지식의 곳간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모티프로 삼기에는 따분한 측면이 있다.

 

▲ 사유적 공간, 116.8×91㎝ oil on canvas, 2011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 책이란 독특할 것도, 이색적일 것도 없는 평범한 소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런 소재를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바꿔버렸다. 그의 그림에서 책은 무언가 의미 있는 대상으로 재탄생되며, 여느 풍경과 마찬가지로 운치 있는 이미지로 부각된다.

 

▲ 사유적 공간, 116.8×91㎝ oil on canvas, 2011

 

그것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근작에서 책들은 뚜렷한 명암법에 의해 빛과 어둠이 갈린다. 배경을 없애버리고 책의 디테일을 오롯이 부각시키는데 거기에 미묘한 색감에 의한 음영효과까지 보태져 한층 실재감을 더해준다. 바로크미술에서 엿볼 수 있는 빛의 콘트라스트가 화면을 섬돌처럼 괴고 있다. 고전적 화풍에 현대적 감각이 접목된 조형적 결합이 이석주(ARTIST LEE SUK JU, 李石柱)작가의 작품을 한층 묵직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글=서성록(미술평론가, 안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