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지난 5월 출범했다. 930억달러(약 104조9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6개월안에 목표액인 1000억달러를 조달,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비전펀드의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으며 투자의 중심은 손정의 회장이다.

참여한 주주는 애플, 폭스콘, 퀄컴, 샤프 등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가 450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위 계승 서열 2위이자 국방장관인 모하메드 빈 살만 부(副)왕세자의 주도로 탈 오일머니 로드맵을 짜는 상황이다. 그 중심에서 이번 비전펀드 투자는 소위 데저트밸리 구축을 위한 승부수로 평가받는다.

비전펀드, 그것이 알고싶다
비전펀드의 출범과 함께 펀드의 방향성에 상당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주목한 '제2의 캄브리아기(紀) 폭발'은 어디일까?

현재까지 비전펀드가 투자했거나 투자를 발표한 곳은 10여곳이다. 먼저 엔비디아. 소프트뱅크는 지난 5월24일 엔비디아의 지분 4.9%를 40억달러에 매입해 4대 주주로 올라섰으며 이를 비전펀드로 이관했다. 소프트뱅크는 7일(현지시간) 실적발표에서 비전펀드로만 1052억엔(약 1조72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평가이익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1993년 대만의 젠슨 황과 미국인 2명이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처음에는 CPU 생산을 기획했으나 인텔 등이 버티고 있는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판단해 그래픽 칩셋(GPU) 분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1995년 공개한 그래픽 칩셋 NV1은 실패했으나 1997년 RIVA 128이 크게 성공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다. 지포스 시리즈와 엔포스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AMD의 숙적이기도 하다.

▲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출처=이코노믹DB

현재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의 왕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주력인 GPU에 힌트가 있다. GPU는 그래픽 처리를 매끄럽게 도와주는 기술이 필요하며, 여기에서 엔비디아는 이에 필요한 고속병렬연산기술에 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는 모바일 시대가 정점으로 치닫으며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의 화두가 부상했고, GPU의 엔비디아는 여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막강한 데이터 처리 기술이 필요한 상태에서 엔비디아는 고속병렬연산기술을 통해 GPU의 활용도를 단숨에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엔비디아의 저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주 거품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부터 기본적인 인공지능 플랫폼까지 엔비디아의 영향력은 날카롭게 발전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다양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위치한 로봇개발회사 브레인(Brain)코프도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았다. 비전펀드가 출범한 후 공식적으로는 처음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하나며 투자액수는 1억1400만달러(약 1300억원)이다. 브레인코프는 2009년 설립된 회사며 다양한 기계들의 두뇌인 로봇 두뇌를 개발하는 곳이다. 일종의 로봇 운영체제를 만들어 하드웨어와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브레인코프는 퀄컴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인공지능 로봇 업계에서는 탁월한 기술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브레인 운영체제를 통해 자율주행 청소 로봇 엠마(Enabling Mobile Manufacturing Automation)를 개발하기도 했으며 엠마는 센서와 카메라, 그리고 장애물을 피해 청소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 GPS나 근거리무선통신(비콘)을 탑재하지 않았으나 한 번 경로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청소를 지원한다.

▲ 브레인코프의 엠마. 출처=소프트뱅크

플렌티도 있다. 특이하게도 농업 스타트업이며 역시 비전펀드 출범 후 공식적으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하나다. 2억달러(약2270억원)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가인 매튜 버나드와 식물과학자인 네이트 스토어가 공동창업했으며 작물을 실내에서 수직으로 재배하는 버티컬 파밍 기술을 가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남부의 5만2000여㎡ 규모의 실내 농장에서 LED 조명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살충제와 GMO가 없어도 대량의 유기농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작물 재배와 비교해 무려 350배의 효율이 있다는 자신감이 눈길을 끈다. 최근 플렌티 최고경영자인 매튜 버나드는 “더 좋은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는 과감하게 시설 확장에 나설 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손정의 회장은“플렌티가 현재의 푸드 시스템을 뜯어고쳐 삶의 질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2015년 설립된 나우토는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소프트뱅크를 위시한 몇몇 기업의 투자를 공동으로 받았으며 총 투자금액은 1억5900만달러(약1820억원)다. 안드로이드의 대부인 앤디 루빈이 이끌고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을 통해 육성된 기업이며 비전펀드는 물론 GM, 그레이록 파트너스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

▲ 나우토. 출처=소프트뱅크

나우토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이자, 센서와 카메라 기술을 바탕으로 외부환경변화를 빠르게 습득해 체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카메라, GPS 기술을 연결한 일종의 원스톱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0월 일본의 도요타와 독일의 BMW가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구글과 테슬라 등이 주도하고 있는 자율주행차 기반 인프라 시장의 숨은 강자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온디맨드 카셰어링 업체 디디추싱도 비전펀드의 사정권에 있다. 이에 앞서 소프트뱅크는 지난 5월 디디추싱에 50억달러(약5조51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올라택시와 그랩택시 투자를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 온디맨드 카셰어링 업체들을 연이어 우군으로 포섭한 상태에서 중국에서 우버차이나를 몰아낸 디디추싱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손정의 회장은 최근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 현장에서 우버 지분 투자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디디추싱과 비전펀드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일단 디디추싱이 비전펀드의 사정권에 들어온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근거리 위성통신 업체인 원웹에도 투자했다. 2012년 설립된 원웹은 저궤도 위성을 쏘아 세계를 커버하는 초고속 통신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받을 당시 소프트뱅크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으며 올해 2월 경쟁사인 인텔셋과의 합병안이 흘러나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원웹은 페이스북의 인터넷오알지, 구글의 프로젝트룬처럼 보편적 인터넷 환경을 목표로 한다. 700개 이상의 인공위성을 저궤도에 올려 극 지방이나 오지에도 인터넷 사용자 경험을 꾸준하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구글의 프로젝트 엑스팀에서 근무하던 그렉 와일러가 수장을 맡고 있다.

온라인 대출 서비스인 소피도 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하지만 비전펀드에서 일부 금액을 부담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5년 이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은 상태에서 핀테크 영역에서의 존재감이 강력하다는 평가다. 소피는 2011년 설립됐으며 모기지, 모기지 차환, 개인 대출을 P2P 방식으로 전개하는 업체다.

사실 소피는 재미있는 대출 회사다. P2P 대출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학자금 대출 전문회사로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창업주 마이크 캐그니는 스탠퍼드 대학에 다닐 무렵 과도한 학자금 대출로 자신이 고통을 겪었고, 이에 착안해 동문들끼리 학자금 대출을 받도록 서비스를 설계했다. 물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소위 성공한 동문이다. 자연스럽게 멘토와 멘티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이는 고스란히 소피의 경쟁력으로 체화되기도 했다. 대출심사도 기본적인 신용등급은 물론 '90일만에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등 기본적인 대출 시스템과는 다르다. 이러한 방식은 대출 스펙트럼이 넓어진 현재에도 유효하다.

가든트헬스는 2012년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가든트360이라는 혈액검사 솔루션을 가지고 있으며 간단한 암 진단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을 비전펀드로부터 받았다.

가든트헬스에 따르면 자사의 가든트360은 혈류에서 종양 DNA를 포착, 거의 모든 암을 실시간으로 사전에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해상도가 높은 종양 조각 사진을 제공하는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향후 5년간 100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액체 생검을 시행, 데이터 확보를 통해 자사의 솔루션 고도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임프로버블은 2012년 영국에서 설립됐다. 가상현실을 지원하는 스페이셜 운영체제를 개발했으며 현재 베타버전이 나온 상태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블록체인 기술로 다수의 이용자가 한번에 가상현실 세계에 진입하는 기술로 유명하다. 비전펀드는 임프로버블에 5억2000만달러(5870억8000만 원)를 투자했다. 미국의 와이어드가 지난해 영국의 눈길가는 스타트업 10곳을 선정할 당시 임프로버블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구글과 협력해 게임 개발자들의 가상현실 플랫폼 개발에 공동으로 나서는 등, 기술력으로는 최고수준이라는 평가다.

임프로버블에 대한 비전펀드의 투자는 가상현실을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으로 조성한 인프라와 연결하고자 하는 일차적인 목표를 넘어 각종 사업에 가상현실을 접목하려는 민간 기업들을 공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가상현실은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교육사업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임프로버블의 스페이셜 운영체제는 다수의 이용자들이 가상의 세계에 매끄럽게 진입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시신부검 현장을 가상현실로 교육한다고 가정할 경우, 교수와 학생들 다수가 한번에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OSI 소프트는 실시간 데이터 분석회사다. 1980년에 설립되어 스타트업이라 부르기는 애매하다는 평가다. 산업용 사물인터넷 데이터를 수집하는 솔루션을 가지고 있으며 소위 산업 사물인터넷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다. 석유와 가스, 기타 중화학 산업에서 발생하는 모든 공정의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제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OSI 소프트의 정체성이다.

이 외에도 비전펀드는 로봇 제조사 보스턴 다이내믹스, 공유 오피스 위워크 투자도 유력하다. 이들은 이미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곳이다. 일각에서는 인도 전자상거래 업체인 플립카드, 미국 스포츠용품 전문점 온라인 쇼핑몰인 파나스틱 투자도 거론된다. 사실이라면 플립카드는 아마존의 공습에 대비해 전자상거래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한편, 알리바바 투자로 신의 한수를 보여준 손정의 회장의 매직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파나스틱 투자 가능성에 대한 반응은 극과극이다. 흥미로운 투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비전펀드의 속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 비전펀드 투자 현황(디디추싱은 소프트뱅크 투자). 출처=소프트뱅크

위성부터 인공지능까지
소프트뱅크가 비전펀드의 공식 투자처로 밝힌 곳은 인공지능부터 로봇, 핀테크, 가상현실, 농업ICT, 바이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약속한 일자리 5만개를 만들겠다고 밝힌 가운데 비전펀드의 첫 투자 행보가 플렌티와 나우토, 브레인코프 등 주로 미국 서부에 포진한 테크 스타트업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투자의 영역을 꼭 스타트업으로 한정하지 않은 대목도 흥미롭다. OSI 소프트는 1980년에 설립되었을 정도며, 몇몇 스타트업의 CEO는 환갑을 넘긴 전문가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스타트업은 하나도 없다. 투자를 받은 기업 대부분 미국 기업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비전펀드의 다양한 식성과 더불어, 꼭 ICT 기업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렌티는 ICT 기술이 들어가지만 본질은 농업이며, 투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플립카드는 전자상거래 업체다. 결정적으로 갑론을박이 나오는 파나스틱은 말 그대로 온라인 스포츠용품점이다.

그런 이유로 비전펀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소한 손정의 회장은 ICT와 스타트업이라는 매개를 넘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비전펀드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