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대기업이 구축한 견고한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파산했다가 다시 일어서기도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비해  힘들고 어렵다.

중소기업의 회생절차(법정관리)는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다른 걸까? 최근 대기업의 회생절차는 P플랜(Prepackaged-plan) 또는 스토킹 호스(Stalking-horse)와 같이 선진 M&A(인수합병) 기법들이 동원되어 기업을 빚더미에서 탈출시킨다.

 중소기업은 이런 선진기법들을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인수기업이 M&A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데다 소기업의 기업가치를 신뢰하지 못하는게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비해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은 현실에서 중소기업의 회생 탈출 방안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한계상황으로 몰릴까?

실물경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의 조덕희 연구원은 지난 3월 '중소기업정책 활용도에 비해 실효성이 낮아'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3년 동안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한 기간이 6개월 이상이라고 응답한 중소기업 비중은 지난해 17%를 차지했다"면서  "중소기업 중 통상적인 한계기업이 17%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자를 갚지 못하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17%가 한계기업이란 얘기다.

 중소기업의 사정을 고려해  '경쟁력 위기 한계기업'이란 개념을 도입했을 때,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은 전체 조사대상 1571개사 중 332개사인 21.1%를 차지한다고 그는 밝혔다.

한계 중소기업이 모두 회생절차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조정과 산업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에 비해 쉽게 파산절차에 돌입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5월 도산법원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현우의 정동현 변호사는 절차를 밟았던 중소기업과 조사위원 등 회생절차의 관계자 40여 명의 의견을 들어 중소기업들이 회생절차에서 겪는 문제점을 짚었다.

▲ 지난 5월 27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열린 개원기념합동 세미나에서 정동현 변호사(왼쪽 두 번째)가 중소기업 회생절차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DB

◆ 유동화전문회사, 중소기업 회생계획안 동의 안 해줘, 강제인가 늘려야

중소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기계장치나 공장 부동산에 담보로 가지고 있는 금융채권자들이 여신건정성을 이유로 이 채권을 판다. 이 채권은 유동화전문회사가 싸게 매입해서 경매 등을 통해 팔아 이익을 남긴다. 이 이익은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부실채권(NPL)이라고 한다.

이렇게 담보 채권자가 시중은행에서 유동화전문회사로 변경되면 회생절차에서 이들의 요구상황을 만족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 파산법조인과 구조조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DIP 연구소 김판섭 소장은 "회생절차를 밟는 중소기업은 절차 막바지에서 자신의 회사가 어떻게 채무를 상환한 것인지 회생계획안을 수립한다. 회사는 매년 한 번씩 최대 10년 동안 채무를 상환하는 회생계획안을 세울 수 있는데, 기계설비나 부동산 담보채권을 가지고 있는 유동화전문회사는 채권을 조기에 회수에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려는 경향이 강해 회생계획안 동의에 인색하다"고 그 원인을 설명했다.

회생계획안은 담보를 가지고 있는 채권자들의 채권액 75%, 일반채권자의 채권액 66%가 회생계획안에 동의를 해야 채무조정안이 확정된다.

정 변호사는 "유동화전문회사들은 회생계획안 동의조건으로 기계설비 등을 우선 매각할 것을 강요하고 이에 대한 매매계약서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며 "설비 등 부동산을 매각한 후 중소기업이 계속영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이런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회생절차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정 변호사는 "자산 매입 후 임대프로그램(Sale And Lease Back)을 확대해해 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기계, 설비, 토지 및 건물 등 고정자산을 금융관련 계열사, 리스 회사를 비롯한 다른 기업에 팔고 그것을 산 회사가 이를 다시 빌려주는 방식이다. 세일 앤 리스백은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용하고 있는 제도다.

문제는 이 방법의 활용도가 낮다는 점이다.  정 변호사 "세일 앤 리스백은 중소기업에 유효한 방법이긴 하지만 부동산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기계장치에는 적용된 사례가 없다"면서  "부동산조차도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이 방법은 고려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세일 앤 리스백의 활용도가 낮은 것과 관련하여 캠코는 "2017년 세일 앤 리스백 총 사업계획규모는 5천억원"이라며 "캠코는 금융권에서 신규 자금 지원을 꺼리는 회생절차(법정관리) 기업 등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상반기 영업실적이 가시화되어 평가가 가능해지는 하반기에는 지원 실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효율적인 중소기업의 회생을 위해 법원이 강제인가결정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인가는 채권자들의 동의율(담보채권액 75%, 일반채권액 66%)이 미달해도 법원이 직권으로 회생계획을 인가하는 제도다.

정 변호사는 "기업의 존속가치(계속가치)가 파산할 때보다 높게 평가된다면, 채무자회생법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유동화전문회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강제인가결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생법원이 중소기업에 대해 강제인가결정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김두일 유암코 구조조정본부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김두일 본부장은 "유동화회사가 기본적으로 무리하게 회수율을 높이는 문제는 있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회생 가능성 있는 회사를 살리려고 하는 상황도 많이 봤다"면서  "중소기업 특성상 사주가 경영권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투자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 시간 끌기 회생계획안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한때 지방법원에서 강제를 인가를 많이 했는데, 몇 달 뒤 회사를 가보면 회생계획을 이행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며 "중소기업 회생절차에서는 신규 운전자금이나 투자금(DIP파이낸싱)을 지원하는 제도를 같이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피곤한, 너무 피곤한 ‘간이회생절차’

빠르고 효율적으로 채무자 기업의 재건을 돕도록 한 '간이회생절차'가 중소기업에 오히려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는 의견도 이날 나왔다.

간이회생절차는 일반적으로 총 채무액 3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이용하는 제도다. 지난 달 방송인 이 훈이 이 절차를 밟아 채무의 79%를 면제받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절차를 간소화하여 패스트 트랙으로 법원이 운용한다. 동의조건도 완화되어 일반채권액과 동의권자 절반의 찬성만으로 회생계획이 통과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너무 빠른 일정 때문에 인적, 물적 여건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중소기업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회계처리 등 내부 관리시스템이 미흡하고 회생절차로 인적 일탈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회계자료 등 회사의 상황을 정리하여 법원에 밝히는 것이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조사위원이 원활하게 자산과 부채를 조사할 수 없어 조사보고서를 매우 보수적으로 도출하는 경향이 크다"고 강조했다. 조사위원의 조사보고서가 보수적이면 법원은 보고서에 근거해 회생절차를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채무자 중소기업은 주로 파산절차로 이행한다는 것이 파산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 변호사는 짧은 조사 기간으로 재무제표의 신뢰도가 낮은 영세기업에 대해 '과거의 부진한 실적을 평균 계산해 향후 추정 소득을 산출'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간이회생절차의 문제점에 대해 회생법원이 조사위원의 조사 기간을 기계적으로 정하지 말고 사안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조사위원 조사 기간에 회계전문가 등 외부 조력자가 개입될 수 있도록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밖에 이날 세미나에서는 중소기업 회생절차에 관여하는 구조조정담당임원(CRO)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과 출자전환으로 대표이사의 지분이 희석돼 회생절차를 졸업하더라도 경영권 확보가 어렵지만 채권자들은 회사 경영에 무관심해 경영정상화 의지가 하락한다는 등 문제점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