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 145×112㎝ mixed media, 1999

 

80년대의 시대상황이란 해방이후 강력한 정부 주도하에서 권위주의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과정에서 물량적 성취와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의 합리성의 추구는 상당히 발달하였지만 상호간의 토론과 합의의 과정은 무시되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은 대항적 문제의식으로 민족적 민중적 인식정향을 갖든지 아니면 패배주의와 소외의식으로 가득찬 시대적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석주(ARTIST LEE SUK JU, 李石柱)작가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마주서지는 않았다. 그는 후자, 즉 시대를 비켜갈 수는 없지만 적극적으로 껴안을 수도 없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자리를 선택했다. 이때 그가 현실을 대면하는 방식은 순간적으로 의식의 공백을 일으키는 듯 한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응시’하는 것이다.

 

▲ 창, 145×112㎝ mixed media, 1999

 

이를 이석주 작가는 “집단의 사회성에 대해 개인이 존재하기 위한생존방식이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선 아웃사이더의 시각”이라 말한다. 그리고 일련의 80년대 작업들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집단과 현실에 대한 이러한 관심사는 개인의 존재를 흐리게 하는 집단에의 동화에 대해 기피하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 프랜시스 베이컨의 처절한 절규의 표현이거나 집단형성과 발언에 의한 외침도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각은 트릭이나 과장이 아니라 일상의 매순간의 포착과 객관성있는 형상으로 집단사회의 맹목적 의지와 개인의 심리적 상황이 연결된 이미지에 의해 일상적 무의미를 새삼 느껴보고자 한다.”<이석주(李石柱)>

 

▲ 1997년 어느 가을날 이석주 작가

 

그렇다. 어떻든 그의 작업에는 일상을 사는 인간들의 반복되는 삶의 고단함이나 더 나아질 희망을 상실한 절망감이나 상호간의 소통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소외감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에게는 언제나 ‘통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은 벗어날 통로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절망감이나 소외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의 화면가득 가로막던 ‘벽’들도 가망 없는 존재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스듬히 비쳐드는 햇살과 그에 의해 깊게 드리운 그림자가 단지 존재의 명암을 은유하고 젊은 날의 막연한 절망감을 대변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벽은 그림자의 깊이 때문에 더 빛나는 이면이 존재해 왔다. 고개 숙인 뒷모습이나 한쪽 귀퉁이에서 사라져가는 일상의 인간들도 여전히 날개 없이 추락하는 벼랑 끝의 존재들은 아닌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보아진다.

△글=김연희/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