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116.7×91㎝ acrylic on canvas, 1993

 

이석주 작가는 19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그렇게 ‘일상의 삶’을 예술적 원천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결코 동일한 일상이 아니다. 거리는 최루탄으로 얼룩지고 의식은 레드컴플렉스로 얼룩졌던 80년대 젊은이의 일상과 세계화라는 모토아래 유럽 배낭이나 어학연수 등이 주된 관심사가 되었던 90년대 젊은이의 일상이 다르듯이 그의 예술세계 속에서 길러진 일상도 그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에게는 급격한 변화추구나 실험의식은 없다.

 

▲ 회상적 여행, 72.7×60.6㎝ oil on canvas, 1994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방식대로 성실하게 변화를 모색해 왔고 그것은 그의 작업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에ㅡ대해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서정적 극사실주의’라는 조금은 역설적인 듯한 표현을 하고 싶다. 차갑고 냉정한 극사실적 테크닉으로 대단히 따스하고 서정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는 능력 그것이 그가 지닌 최대의 매력이 아닐까싶다.

 

▲ 일상, 162×130㎝ acrylic on canvas, 1996

 

70년대 말 그는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벽’시리즈를 제작하고, 이를 거쳐 8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그의 작업테마로 작용해 온 ‘일상’시리즈가 된다. 그러나 ‘80년대의 일상’ 작가가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는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라면 ‘90년대의 일상’은 작가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의식, 무의식의 기억, 일상과 환상과의 접속 등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변화라 할 수 있다.

 

▲ 1990년대 중반 이석주 작가

 

80년대 이석주(ARTIST LEE SUK JU, 李石柱)작가를 지배했던 의식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여기서 그가 마주한 현실이란 이런 것이다. “고정관념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지극히 타산과 양보 없는 이해관계 속에서…은폐하게 하여 자각 못할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개인의 고립과 자신의 파괴…집단의 노예모습이 우리의 일상이다. 나의 일상에 대한 작업은 이러한 집단적 일상에서 자신의 존재의 자각과 확인에 대한 욕망으로부터이다.”

△글=김연희/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