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 퇴직 하고 나니 내 나이 51살, ‘인생은 60부터’라는데 그냥 놀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그렇다고 딱히 기술이 있는 건 아닌데다 이 나이에 새롭게 취직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동창들처럼 프랜차이즈를 알아보다가 52살이 되던 해, 나는 치킨집 사장님이 됐다. 처음 해보는 내 사업이었다. 의욕이 충만했다. ‘아직 젊은 나’는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자신감은 오래 가진 않았다. 회사 생활 30년 동안 사회의 혹독함을 알았던 내가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왜 했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지난 겨울에는 AI(조류인플루엔자)로 마음을 졸여야 했고,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눈치를 봐야했다. 본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않는 물품까지도 ‘본사의 노하우’라며 구입을 강요했다.

# 어제는 빵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해당 매장에서 공급받는 계란은 정부의 조사결과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붙였다. 그래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진 걸 느끼는 건 체감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산란계 농가의 적합 판정 인증서도 붙여 봤지만, 기존보다 30% 가까이 손님이 줄어 애가 탄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날로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계란이 들어간 먹거리를 완전히 기피하고 있다. AI에 이어 계란 공포까지 덮치면서 계란과 닭고기 모두를 꺼리는 분위기다. 치킨프랜차이즈와 삼계탕·닭갈비 음식점 등 닭을 주 메뉴로 파는 음식점도 애가 탄다고 한다.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은 이해한다. 정부에서 육계는 피프로닐 같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공식 밝혔고, 농가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통해 적합 판정은 받은 곳도 있다고 밝혔지만 큰 소용이 없어 보인다.

자영업자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에 이어 프랜차이즈 갑질이 도마위에 오르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 운동이 벌어졌고 해당 브랜드 점주들은 고스란히 매출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에는 ‘살충제 계란’ 이슈로, 빵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속을 태우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19일이코노믹리뷰에 “살충제 계란이 계속 언론에 나오면서 손님들이 30% 가까이 줄었다”면서 “본사에서 공급받는 계란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불안해서 인지 구입을 꺼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빵집 매출은 최근 이틀 사이 하루 평균 매출이 20% 정도 떨어졌다. 더 불안한 것은 이런 사태가 지속된다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경기로 매출이 좋지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서울 명동에서 삼계탕 집을 운영하는 이모씨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중국 정부의 한국여행 금지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줄어들면서 이미 1차 충격을 받은데다, 지난해 AI에 이어 살충제 계란 공포가 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비자 불안으로 음식점 내 테이블은 텅텅 비었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어결치·대끝치’...계란 파동 역습 우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면서  ‘어결치(어차피 결국은 치킨집)’, ‘대끝치(대기업의 끝은 치킨집)’ 같은 신조어가 생겼다.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그렇지만 부푼 꿈을 안고 도전했지만, 여전히 막막한 게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프랜차이즈 가맹자 수는 2012년과 비교해 23% 늘어난 18만1000개다. 그 중에서 치킨집은 2만4719개다. 호프집 등 치킨을 겸하는 업체까지 합치면 약 3만6000개로 추정된다.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벌어들이는 돈은 넉넉하지 않다. 통계청이 전국의 편의점과 치킨·피자집, 커피전문점, 빵집 등 18만여곳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치킨집은 1년에 평균 2360만원, 커피전문점은 평균 2110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린다. 가구당 평균 처분가능소득인 연 4308만원도 못 버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계란 파동은 장바구니 부담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자영업자만 괴로운 게 아니라 모든 소비자들이 고통을 받는다.  장마와 폭염이 지속되면서 신선식품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계란 파동까지 덮쳐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계란 한 판(30개) 가격은 7595원이다. 1년 전보다 42% 올라 AI 재발 이후 다시 가격 널뛰기 조짐이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만약 계란 파동이 장기화한다면, AI 이후 조금 잠잠해진 계란 파동이 다시 역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계란 관련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파동 하루 만에 판매를 재개했지만,  대형마트에서 판매한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비자 불안은 더욱더 커진 상황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 모두에서 판매한 계란 중에서 ‘살충제 계란’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계란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 김밥집을 운영하는 점주들의 걱정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광나루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대부분 김밥에 계란이 들어가는데 가격이 다시 널뛰기를 하면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면서 “최근 며칠 사이 김밥에서 계란을 빼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부쩍 늘었고, 근처 가게에서는 아예 계란을 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AI에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이어지면서 당분간 계란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AI와 치킨가격 논란으로 치킨 소비가 위축되면서 육계 가격이 내려간 것처럼, 불안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소비 위축으로 계란 값이 크게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