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국회 인사 청문회 당시 배달앱 논란이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의 말이 발단이었습니다. 당시 청문회에서 김 의원은 “배달앱이 국내 중소상공인들로부터 약탈적 수수료를 받고 있다”면서 “플랫폼이 곧 사회간접자본(SOC)이다. 배달앱 자체를 국가가 만들어 운영해 제공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 장관은 “정부가 배달앱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베달앱을 정부가 만든다. 그러니까 국영 배달앱을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되지 않습니다. 공사가 다망한 분들이 모바일 사업에서 O2O 사업의 일부에 불과한 배달앱 시장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꼼꼼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은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으나 천천히 살펴보면 시장이 돌아가는 기본적인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청문회 종료 후 논란이 일자 과기정통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어 ‘정부가 배달앱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당시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청문회 도중 신중한 답변을 하려다 분위기에 휩쓸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 나왔을 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철저한 아마추어리즘...전략도, 소통도 없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가계통신비 인하 논란을 취재할수록 실소를 참기 어렵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스워서 비웃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현안을 다루는 사람들이 감정에 매몰되어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봤던 정치 스릴러 영화에서는 정부의 정책과 로드맵을 둘러싸고 냉정하고 무서운, 하지만 세련되고 ‘있어 보이는’ 묵직한 전투가 벌어지던데, 21세기 대한민국 가계통신비 인하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 멱살을 잡고 감정싸움 벌이는 아이들 같습니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초 가계통신비 인하 논란이 기본료 폐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을 무렵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대통령 공약이기는 했으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1만1000원에 달하는 기본료 폐지를 추진하며 모든 논의를 블랙홀로 떠 밀었습니다. 당장 1만1000원 통신요금이 할인된다는 것에 국민들은 환호했지만, 국정위는 막상 기업과는 소통할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통신 관계자는 “대통령 공약에 기본료 폐지가 들어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국정위를 통해 갑자기 화두로 삼을 것이라고는 통신3사 모두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기본료 폐지가 별안간 사회적 합의기구의 장기 프로젝트로 넘어가며 사실상 폐기수순을 밟고, 약정할인율 25% 인상이 화두로 부상했을 때도 비슷합니다.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는데도 정부는 통신사와 대화하지 않았어요. 유영민 장관이 통신3사 CEO와 만나 협조를 요청했으나 무위로 그치고, 통신3사가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공언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조율, 최소한의 교감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대화의 창구를 열어 문제해결을 위해 시도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아직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유영민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신3사 CEO를 다시 만나 25% 약정할인율 인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사태를 무마하겠다고 말했으나, 통신3사에는 냉랭한 기류만 감지됩니다. 통신3사 CEO들이 휴가를 가야하기 때문에 만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와요. 일단 일정을 조율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으나 이 역시 최소한의 물밑접촉도 없는, 말 그대로 ‘막 던지기’로 보입니다.

“제발 대화를 하세요”

가계통신비 인하는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태 초기 정부는 통신사와 적절한 대화에도 나서지 않고 무턱대고 발표부터 해버렸습니다. 높은 통신사 영업이익을 믿고, 국민의 지지에 고무되었기 때문일까요. 그 과정에서 정부와 통신사 모두 진흙탕에 빠져버린 느낌입니다.

논의의 전개에 있어 안타까운 지점이 많습니다. 최소한 한, 두 번 정도 상황을 고무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태 초기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을 발표하기 전 통신사와 원만한 의견수렴을 했다면, 25% 약정할인율 인상을 발표하기 전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통신사의 반발을 예상했다면, 그리고 통신3사 CEO를 만날 때 무턱대고 만나지 말고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할 수 있는 명확한 아젠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심지어 25% 약정할인율 인상에 있어 통신3사는 완벽한 통일대오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모회사와의 이슈가 있어서, 지배구조가 얽혀있어서, 5:3:2의 특수한 시장 상황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분명한 협상의 여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기회를 날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나자”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답은 이미 정했으면서 말이죠.

결국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가계통신비 이슈는 감정적인 아젠다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칫 배임으로 내몰릴 수 있는 통신사에게 퇴로도 만들어 주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큽니다. 상황이 이러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나오는 25% 약정할인율 인상 소급적용 이슈에서도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계통신비 인하를 두고 산업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간도 사라졌고, 서로를 불신하는 ‘강대강 대치’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정부가 원만한 의견교류도 없이 무리하게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장한 것에 대해 통신사들의 감정 반발이 있다”고 말합니다.

눈치챘나요? 이제 시민사회단체도 가계통신비 인하를 추구하는 정부의 편이 아닙니다.

유 장관 청문회 당시 국가 배달앱 운영 이슈가 논란이 되었을 때, 해프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태도는 ‘그냥 따라와’라고 모든 플레이어를 압박하는데 그치는 것 같습니다. 청문회 당시 나온 유 장관의 말이 왠지 진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화도 없이, 소통도 없이 정권 초기 자신감만 믿고 일방향 지시내리기만 하려면 그냥 국영 통신사 세우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잡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제발, 대화를 하세요. 가능하면 서로 휴가일정도 맞추고요.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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