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Illusion), 259×193.9㎝ acrylic on canvas, 1998

 

이석주 작가는 우리 하이퍼 세대 가운데 기념비적 주역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의 작품은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에 필적할만한 것임과 동시에 우리의 극사실 형상의 ‘다름’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초기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랬듯이 80년대 초의 ‘벽돌’시리즈 같은 경우는 에스테스나 척클로즈의 것들과 비슷한 맥락의 중성적 이고 차디찬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90년대에 접어들어 서정과 회화성을 접목시키는 시도와 변신에 성공한다. 이제는 극사실적 묘사는 부분 내지는 국부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절제되었던 이야기를 다시금 하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변화는 동시대의 극사실 작가군이 거의 일시에 보인 문화현상과 시대상황의 구조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분화되는 갈래는 크게 네 가래로 나뉜다. 첫째, 대체로 개념적이고 미니멀한 경향 둘째, 신구상적 도상으로 메시지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 셋째, 표현적 화면과 절충을 이루는 경향 넷째 데페이즈망이나 콜라지 등을 통한 초현실주의적 경향 등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원론적이고 교조적 하이퍼리얼리즘은 거의 퇴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하이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히 작가의 경우 그 명맥을 잇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많이 거명된다.

 

▲ 환(Illusion), 654.3×290.9㎝ oil on canvas, 1998

 

아무튼 80년대 말 이래 작가의 작업은 넷째의 부류에 근접해 있다. 서정적이고 관조적인 도상들과 몽환적인 기억의 단편들을 적절히 숙성시키고 조합하여 르네 마그리뜨류의 깔끔하고 점잖은 초현실주의의 분위기가 아주 짙게 나타난다.

특히 온갖 소음을 제거한 채 작가의 내면에서 아련하게 명멸하는 파노라마의 단편들을 슬로우비디오로 보는 것 같은 환영(幻影)이야말로 그의 화면이 보여주는 진수이다. 최근 작가는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幻’이 그것이다. 특이한 것은 거대한 화면의 여백에 비스듬히 앉아 사색하는 사람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단조로운 듯한 평면적인 실루엣이 상당한 운동량을 동반한 필치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확실히 스프레이에 주로 의존한 묘사와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선적(線的, 뵐플린이 바로크를 말하기에 앞서 르네상스 미술을 불러 말한) 도상의 메커닉(mechanic)한 엄격성을 이완시키려는 장치로 읽혀진다.

이 실루엣 도상으로 인하여 그동안 화면에 단골처럼 등장해 왔던 많은 일상의 편린적 도상들은 또 다른 알레고리적 자율성을 갖게 된다. 솜사탕 같은 일상 너머로 숨길 수 없는 번뇌의 자락들이 있음을 비쳐주고 있다.

△글=이재언(미술평론가)

 

▲ 1980년대 후반 이석주 작가

 

◇현대인의 자전적 풍경

이석주(李石柱)는 우리 화단에서 하이퍼리얼리즘(초현실주의,Hyperrealism)의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다. 서구조형의 일맥에 닿아 있으면서도 우리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뛰어난 감성의 화면 구성은 이석주 조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의 화면의 주조를 이루어 온 기차, 시계, 백마 등은 기실 우리 것이라기보다는 서구 문명적인 것에 더 가깝다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을 우리의 의식에 전치시켜 세련된 현대의식과 공감대를 일으켜주는 것은 이 작가의 창의성이 그만큼 두드러지다는 예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의 초현실 화면들은 허구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현상적인 감성 응집의 깊은 전달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끝없는 미지의 시간과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는 현대인의 환상여행이자 상실감에 자괴스러운 현대인의 자전적 풍경이기도 하다.

△글=류석우/미술시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