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네이버 영화

박훈정 감독이 누군가. 영화 <신세계>로 한국 누아르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주인공이다. 심지어 <신세계>에 몰입했던 팬들은 그 속편이 나오지 않음을 알고 크게 안타까워 했다. 그런 박훈정 감독은 또 한편의 누아르 영화를 들고 나왔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초청을 한국에서의 개봉 일정 때문에 참가를 고사했다는 사실은 박 감독이 이번 영화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아르를 표방하는 영화이기에 <V.I.P>는 시종일관 ‘다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 여기에 눈빛만으로도 연기가 되는 장동건, 연기 ‘본좌’ 김명민, 명품 조연 박희순, 꽃미남 배우 이종석 그리고 <신세계>의 ‘중구 형님’ 박성웅으로 구성된 출연진은 우리나라에서 누아르로 과연 이 이상의 라인업을 갖출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적어도 각 출연진들의 기본 연기력만으로도 기본은 먹고 들어간다. 

<신세계>의 한 기업과 조직폭력배 집단의 권력 암투를 다룬 스케일이었다면 <V.I.P>는 한국-북한-미국의 외교적 대치 상황을 담아내 스케일은 훨씬 더 크다. 여기에 박훈정 감독 특유의 구성이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도록 하는 흡입력을 보여준다.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나 누아르라는 동일한 장르를 표방하기에 박 감독의 전작인 <신세계>와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는 점은 아무래도 약간의 부담감으로 작용한 듯한 느낌이 있다. <신세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뭔가 ‘살짝’ 아쉬운 감이 남는다. 국내 최정상급 배우들을 가지고 만든 누아르 영화 치고는 결말이 쉽게 짐작되는 스토리 전개는 아쉬운 감을 남긴다. 극중 선악의 구분이 모호함에서 오는 누아르 영화의 매력이 <신세계>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감이 있다. 아마도 <신세계>의 기본 콘셉트가 홍콩 누아르 영화 <무간도>에서 어느 정도 차용해 온 것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한국적인 ‘권선징악’ 구도의 누아르라고 본다면 평가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게 다 박훈정 감독이 전작을 너무 잘 만들었던 탓일 것이다. 

▲ 배우 이종석은 <V.I.P>를 통해 자신만의 악역 캐릭터를 잘 구축한 듯 하다. 에서 출처= 네이버 영화

미남 배우 이종석의 악역 연기는 꽤 흥미롭다. 그가 여태껏 맡아 온 배역들과는 다른 이미지지만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극중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그의 섬뜩한 미소는 악역 캐릭터에 한껏 몰입한 배우 이종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두 번 설명하는 것이 낭비일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오랜만에 보는 김명민의 거친 연기도 이 영화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덜고 관람한다면 꽤 괜찮은 한국형 누아르 영화로 평가될 만 하다. 치밀한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력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조폭 일색이었던 우리나라의 누아르 영화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V.I.P>는 한국형 누아르 영화의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